(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비록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연쇄 부상 악재를 딛고 13년 만에 오른 챔피언결정전에서 명승부를 펼친 정관장의 저력은 박수받을 만했다. 선수로서의 마지막 순간을 트로피와 함께하게 된 '배구 여제' 김연경과 더불어, 최종 5차전까지 끝장 승부를 연출한 정관장도 주연이 되기에 충분했다.
정관장은 8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흥국생명과의 2024-25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최종 5차전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2-3(24-26 24-26 26-24 25-23 13-15)로 졌다.
1차전을 0-3, 2차전을 2-3으로 졌던 정관장은 안방으로 장소를 옮긴 뒤 3·4차전을 모두 3-2로 승리, 승부를 최종전까지 몰고 갔으나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해 우승컵을 놓쳤다.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한 뒤 플레이오프 3경기, 챔프전 5경기로 총 8경기를 치렀던 정관장의 봄 배구 여정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흥국생명에 막혀 우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번 시즌 정관장의 돌풍은 대단했다. 정관장은 2라운드까지 4위에 머물렀고, 3라운드까지도 2위와 격차가 큰 3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3라운드 이후부터 반등이 시작됐다.
구단 최다 8연승을 넘어 13연승을 내달리며 V리그에서 가장 '핫'한 팀이 됐다.
연승 신바람을 앞세운 정관장은 4라운드부터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정규리그 마지막 순위 싸움에서 3위로 밀려났지만 플레이오프(PO)에서 2위 현대건설을 제압, 챔프전에 올랐다. 2011-12시즌 통합우승 이후 13년 만에 다시 파이널 무대 진출이었다.
새 역사를 쓸 만한 전력도 갖췄다. 메가왓티 퍼티위(등록명 메가)와 반야 부키리치(등록명 부키리치)가 버티는 '외인 쌍포'는 이번 시즌 여자부 모든 팀을 통틀어 가장 강력했던 외인 듀오였다. 두 선수가 함께 터지는 날에는 이들을 막아낼 수 있는 팀이 없었다.
이 밖에도 염혜선·표승주·노란·박은진 등 이름값 있는 국내 선수들이 시즌 내내 흔들림 없이 팀을 끌고 갔고, 정관장 지휘봉을 잡은 지 3년 차인 고희진 감독도 팀에 완전히 녹아들어 '신뢰의 리더십'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정관장은 주축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부상으로 경기를 뛰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으로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포스트시즌 직전 부키리치가 발목 부상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염혜선과 노란이 근육 경련, 메가가 무릎 등으로 차례로 쓰러졌다.
다른 선수들도 3월 25일 열린 현대건설과의 PO 1차전을 시작으로 이날 챔프전 최종 5차전까지 약 2주 동안 8경기를 치르는 강행군 속에 다들 탈이 났다.
챔프전에선 먼저 2연패를 내준데다 '부상 병동'이라 심신이 다 지친 상황인데도, 정관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베테랑' 노란과 염혜선은 진통제까지 맞고 뛰는 등 투혼을 발휘했다. 외인들도 몸을 불살랐다. 메가는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절뚝거릴 만큼 통증이 심했지만 "다음 경기도 꼭 뛰겠다"며 감독을 졸랐고, 부키리치는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다"며 부어오른 발목을 부여잡고 개인 공격 훈련까지 했다.
투지를 불태운 정관장은 3차전서 0-2를 3-2로 뒤집는 기적의 드라마를 썼고, 4차전에서도 5세트 7-10으로 져 시리즈가 끝나는 듯했던 순간 극적으로 역전해 승리를 가져갔다. 마지막 5차전도 두 세트를 먼저 내준 뒤 다시 두 세트를 따라가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가진 힘을 다 쥐어짜낸 정관장은 5차전에서도 흥국생명과 5세트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를 펼쳤다. 비록 우승이라는 해피 엔딩은 아니었지만, "우승팀을 정해놓고 하는 결승전은 없다. 우리도 몸을 갈아 넣어 이기겠다"며 끝까지 싸우던 정관장의 경기는 배구 팬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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