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먹는 밥이 목멘다…미국 밥이라고 다르겠나[최종일의 월드 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행사서 상호관세에 대해 연설을 하며 한국 25% 등 세계 각국에 부과될 상호 관세율을 설명하고 있다. 2025.04.03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행사서 상호관세에 대해 연설을 하며 한국 25% 등 세계 각국에 부과될 상호 관세율을 설명하고 있다. 2025.04.03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홍수 전략(Flood the Zone)'이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지난 1월 20일 취임한 직후부터 파격적인 정책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고 있다. 매일 국제 현안을 챙겨야 하는 처지에서 따라가기가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다. 마가(MAGA)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채 출발신호가 울리자 휙 뛰어나가는 100m 육상선수가 연상된다. 종목이 마라톤인데도 말이다.

트럼프가 얼마나 짧은 시간에 많은 정책을 다루고 있는지는 행정명령으로 대략 추정해 볼 수 있다. 미국 관보에 따르면 트럼프는 취임 90일째인 4월 20일 현재, 129건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s)에 서명했다. 미국 정치에서도 양극화가 굳어지다 보니 의회를 거치지 않고 신속하게 정책을 추진하려고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기대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인데, 트럼프의 경우엔 특출나다.

취임 100일 기준으로 행정명령은 조지 W 부시가 11번, 버락 오바마는 19번, 1기 트럼프는 33번, 조 바이든은 41번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언론 보도에서 의회 기사는 눈 씻고 찾아봐야 할 정도다. 백악관이 거의 모든 이슈를 끌고 가고 있다. 정부 출범 직후인 데다 상하 양원 모두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준 측면도 있긴 할 것이다.

열정 넘치는 국가정상을 누가 탓할 수 있으랴. 문제는 정책 발표 뒤에 이를 없던 일로 하거나, 고쳐 잡는 사례가 많아 극심한 혼란이 뒤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이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해 단합하자 친(親)러시아 입장을 슬며시 버렸던 개인 차원의 태도 변화를 제외하고도 많다. 한꺼번에 추진하는 정책이 산더미 같아서 빚어진 일이 아닌가 의심이 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규모 연방정부 축소 정책의 일환으로 직원들을 해고했다가 재고용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지난 2월엔 국가핵안보국에서 180명의 직원을 해고했는데 이후 152명이 옷을 다시 입게 됐다. 지난 3월 초엔 연방정부 소유 부동산 443건의 매각 혹은 폐쇄를 검토한다며 명단을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이를 번복했다.

전 세계가 레이더를 바짝 켜고 주시한 관세 정책과 관련해서 혼란상은 더욱 극심했다. 트럼프는 "많은 국가"에 유예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가 6일 뒤엔 "모든 국가에서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 등 품목별 관세 도입 시기에 대한 설명도 매번 바뀌었다.

혼란의 파장은 전 세계로 확산했다. 180개국 이상을 상대로 상호관세를 발표했을 때 한국산 수입품엔 25%의 세율을 책정했다고 트럼프 본인이 밝혔다. 하지만 백악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행정명령 부속서 표에는 한국의 관세율이 26%로 표기돼 있었다. 17개 국가의 세율이 트럼프가 들어 보인 차트와 달랐다. 하루 뒤 백악관은 기존 수치가 맞는다고 확인해 줬는데 오류 발생에 대해 백악관은 이렇다 할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본문 이미지 - 10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전용부두에 수출용 차량들이 세워져 있다.  2025.4.10/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10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전용부두에 수출용 차량들이 세워져 있다. 2025.4.10/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개별 관세 발효를 앞두고는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백악관은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지난 9일 발효 10여 시간 만에 중국을 제외하고 상호관세를 즉시 90일간 유예하고, 10%의 관세만 부과한다고 했다. 지난 11일엔 상호관세 부과 품목에서 총 20가지 품목을 제외했다. 애플 등 빅테크의 로비가 먹혔다는 평가가 많았다.

속도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일단 시작해 보고 문제가 발견되면 수정하면 된다는 식으로 업무를 추진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걸 유연성이 발휘됐다고 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국 NBC 방송은 한 고위직 후보자가 트럼프 인수위 측과의 인터뷰에서 관세 정책은 좀 더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가 탈락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소식통은 "트럼프는 그런 사람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했다.

숙의를 거치지 않고 정책을 즉흥적으로 결정했다가 망각했을 수 있다는 의심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트럼프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 "선거 없는 독재자"라고 공개 비난했다가 8일 만에 관련 질문을 받자 "내가 그랬다고? 믿을 수 없다"고 답했다.

일반적으로 양자 무역 협정은 보통 몇 달 혹은 수년의 체결 기간이 필요한데 상호관세 유예가 끝나는 7월 9일까지 90개 무역 상대국과 '맞춤형 협상'을 추진하겠다고 했으니 정책 입안 과정에서부터 혼란은 내재해 있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 관세로 미국의 황금기를 만들겠다는 것은 '닭에게 암사자를 낳아달라는 것과 같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관세 정책이 적절한지는 이 글에선 논외로 하겠다.

속도전에 열중하는 데엔 3선 도전이 막혀있어 임기가 4년에 불과하고 내년 11월엔 중간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정치사에서 여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경우는 무척 드물다. 민주당이 의석을 대거 가져가면 트럼프는 조기에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 특히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 지위를 모두 잃게 되면 트럼프는 탄핵당할 수도 있다. 그는 1기 때 두 번이나 탄핵 소추됐다. 미국 정치권과 언론에선 탄핵이란 단어가 심심치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과유불급이다. 대통령이 말을 자꾸 바꾸면 정부의 신뢰는 추락하고 국민들의 정책 준수는 약화한다. 의회와의 협치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동맹국들은 대통령의 공언이 불안정하다고 판단되면 협조보다는 거리를 두려고 하게 되고, 적대국들은 일관성 없는 수사에 보다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지도자의 발언에 의구심을 갖게 되면 시장의 변동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막대한 유무형의 손실은 트럼프에게 청구서가 돼 돌아올 수밖에 없다. 징후는 스멀스멀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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