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혐오 피라미드 위에 선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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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혐오가 일상화되는 한국 사회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 이제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 혐오는 낯설지 않다. 저개발국에서 온 이주 노동자, 결혼 이민자, 유학생 등 사회의 경계에 놓인 이들이 주된 대상이다. 극우 집회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적대적 발언이 공개적으로 오가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댓글 창은 외국인을 향한 혐오 표현으로 가득하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많은 이들이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 있다.

외국인은 한국 사회가 익숙하게 여기는 말투나 행동 방식에 능숙하지 않다. 생김새와 문화가 다르고, 언어 능력이나 사회적 자원도 부족하다. 그래서 더 쉽게 조롱받고 외면당한다. 처음엔 "무식하다"며 깔보고, 조금 나아지려 하면 "욕심이 많다"며 욕을 먹는다. 다르면 다르다고 미워하고, 닮으려 하면 또 불쾌하다고 말한다. 도대체 이 모순된 적대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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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편향된 태도가 방치되면 사회 전체를 위협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편견의 본질'에서 편견이란 "충분한 근거 없이 타인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태도"라고 설명한다. 그는 편견의 핵심 요소로 '잘못된 일반화'와 '적개심'을 들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편견'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때, 사람들은 '언어적 공격'에 이어 '회피', '차별', '물리적 폭력', 심지어는 '집단학살'까지 저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포트 척도'는 미국 범죄학자 브라이언 레빈에 의해 '혐오 피라미드'라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그는 혐오의 단계를 다섯 가지로 나눴다. 제1단계는 '편향된 태도', 제2단계는 '편견 행위', 제3단계는 '체계적 차별', 제4단계는 '편견에서 비롯된 폭력', 마지막 제5단계는 '제노사이드', 즉 집단학살이다.

핵심은 하위 단계가 다음 단계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편향된 태도가 방치되면 편견 행위로, 편견 행위가 방치되면 차별과 폭력 및 제노사이드로 이어진다. 더욱 무서운 점은 이 피라미드가 반드시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날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특정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곧장 폭력으로 변할 수 있다. 요컨대 편향된 태도가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위기로 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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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더 깊이 뿌리내리는 혐오

지금 우리 사회가 혼란한 것처럼 혐오는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더 깊이 뿌리내린다. 삶이 고단하고 외로울수록, 사람들은 그 원인을 '외집단'(外集團)에서 찾으려 한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홀로코스트를 일으켰듯, 한국전쟁 당시에도 정치적 이념을 이유로 무고한 이들이 학살당했다. 혐오는 역사 속에서 반복된 비극의 출발점이다.

2018년 제주도에 예멘인 난민 신청자가 입국했을 때의 일도 기억해야 한다. "난민은 범죄자다"라는 편견이 온라인에 퍼졌고, 그들의 국내 정착은 곧바로 '한국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일'로 왜곡됐다. 외국인이 관련된 범죄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추방하라"는 댓글이 이어지는 현실은, 편견이 여전히 한국 사회 곳곳에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혐오와 편견 해소는 공감과 연대에서 만들어져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혐오 피라미드를 어떻게 거슬러 내려올 수 있을까. 세 가지 방향에서 해답을 찾아본다.

첫째, 개인의 성찰이다. "그건 내 생각일 뿐"이라는 말로 합리화되는 편견은, 누군가에겐 생존의 위협이다. 혐오 표현이 왜 문제인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주위 사람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더 나은 사회는 이해와 학습에서 시작된다.

둘째, 혐오를 멈추는 언어의 학습이다. 단순히 "그건 틀렸어"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 '왜 그 말이 상처가 되는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말하고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감은 기술이며, 연대는 그 기술이 실천될 때 만들어진다.

우리는 혐오 피라미드의 어느 층위에 서 있는가

셋째,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사회적 포용은 개인의 마음가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고용, 주거, 교육, 복지 등 모든 영역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법과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사회적 포용은 구체적 정책에 바탕을 둬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혐오 피라미드의 어느 층위에 서 있는지 곰곰이 따져볼 때다. 혐오에 대해 침묵하고 외면하면, 우리는 다음 단계를 허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에게 손을 내밀고, 말을 걸며, 함께 고민한다면 이 피라미드는 부숴버릴 수 있다. 포용 사회 건설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과제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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