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뉴스1) 안영준 기자 = 남자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이 통합 우승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큰 경기 DNA'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DNA는 함께 경쟁 중인 대한항공이 갖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18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2024-25 도드람 V리그 남자부 대한항공과의 홈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1-3(19-25 13-25 25-22 19-25)으로 졌다.
현대캐피탈이 이 경기에서 이겼다면 7경기를 남겨 놓고 정규리그 1위를 조기 확정, 역대 V리그 최단기간 정규리그 1위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완패를 당하면서 축배를 들지 못했다.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은 V리그 최고의 팀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대한항공과 경기 전까지 25승3패를 기록 중이었고, '1강'으로 불리던 대한항공과의 지난 네 차례 맞대결에서도 모두 이겨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정규리그 1위를 조기 확정할 수 있던 '중요한 경기'에서 현대캐피탈은 주춤했다.
정규리그 1위를 앞두고 긴장한 듯 선수들의 몸이 전체적으로 굳었다. 믿었던 레오나르도 마르티네스 레이바(등록명 레오)가 평범한 리시브에서 공을 놓쳤던 것을 포함, 이날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범실 29개를 쏟아냈다.
또한 강력한 서브로 상대를 흔들고 블로킹으로 눌러버리는 현대캐피탈 특유의 리듬과 템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필립 블랑 현대캐피탈 감독이 "선수들이 왜 이렇게 긴장했는지 그 이유를 (숙소로) 돌아가서 물어보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반면 대한항공은 중요한 경기가 주는 중압감을 더욱 즐겼고, 펄펄 날았다.
대한항공은 2세트를 25-13으로 크게 잡는 것을 포함, 1·2·4세트에서 뛰어난 경기 운영 속 여유로운 승리를 챙겼다.
대한항공 요스바니 에르난데스(등록명 요스바니)는 "상대 팬들이 큰 함성을 질러도 내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관중이 많으면 오히려 더 신이 난다"고 했다.
패하면 그대로 1위가 무산되는 절박한 상황이었음에도 토미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 역시 "평소 경기와 다르지 않게 준비했다"며 덤덤했다.

한선수, 유광우, 정지석, 곽승석 등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이 중심이 된 대한항공은 최근 4시즌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한 팀이다.
그래서 대한항공은 한 시즌 동안 꾸준히 잘하는 힘뿐 아니라 단판에서 어떻게 해야 최고의 힘을 낼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베테랑들을 중심으로, 구단·선수·팀 분위기 전체가 중요한 승부를 이겨내는 힘이 체화돼 있다.

이날 경기 두 팀의 극명한 희비는 바로 여기에서 갈렸다. 현대캐피탈은 이번 시즌 내내 잘해 왔지만, 중요한 단 한판의 승부에 모든 힘을 응집시키는 노하우는 아직 부족한 모습이다.
여전히 정규리그 1위 확률이 99%에 가까운 현대캐피탈은 챔피언결정전 한자리를 따 놓은 당상이다.
남은 한 자리를 노리는 팀은 공교롭게도 이날 현대캐피탈이 완패했던 대한항공이다. 대한항공은 정규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오른 뒤 챔피언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과 재회, 통합 4연패 대신 챔피언결정전 5년 연속 우승을 노리겠다는 계산을 갖고 있다.
현대캐피탈로선 다시 만날 또 다른 '빅매치'를 대비해야 한다. 또 무기력하게 패한다면 이번 시즌 최고의 팀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어렵다.
지금 현대캐피탈에 가장 필요한 건 이날 대한항공이 마음껏 발휘했던 '큰 경기 DN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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