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유예가 끝나는 7월 9일까지 90개 무역 상대국과 '맞춤형 협상'을 추진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합의를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의 관세 책사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선임 고문이 폭스뉴스에 나와 "90일간 90개국과 협상하겠다"고 단언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제대로 협상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례로 유럽연합(EU)의 마로스 셰프코비치 무역 부문 집행위원이 14일(현지시간) 협상을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는데, 이 기간 주요 관세 협상 담당자인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출장을 간다.
미국과 연간 무역 규모가 1조 달러(약 1450조 원)에 달하는 EU의 최고위급 협상가가 급하게 찾아오는데 그 상대가 자리를 비운 것이다.
EU조차도 이런 일을 겪는 상황에서 나머지 국가들은 신속한 협상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를 두고 무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렇게 많은 협상을 어떻게 동시에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미국 측 주역이었던 웬디 커틀러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로이터에 "이런 결정들을 준비하는 데는 진지한 협상이 필요하다"며 "이 시간(90일) 내에 이들 국가와 포괄적인 협정을 체결할 방법은 없다"고 단언했다.
트럼프 1기 동안 한미 FTA의 자동차 및 철강 관련 조항을 수정하는 데도 8개월이 넘게 걸렸고, 더 포괄적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도 타결까지 2년 이상 걸렸다.
무역 협상의 실무를 담당할 핵심 인력도 여전히 공석이다. 로이터는 재무부 국제문제 담당 국장도 아직 트럼프가 지명하지 않아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재무부 관계자들은 재무부 직원들이 우크라이나와의 광물 협정 관련 업무 때문에 바쁘다고 토로했다. 영국과 호주 등 트럼프 취임 직후인 1월부터 무역 관련 논의를 하는 국가들도 있지만 이들조차도 아직 결과를 내지 못했다.

백악관도 촉박한 일정을 의식해 공식적인 절차를 최대한 건너뛸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각국과의 무역 합의가 의회 승인이 필요한 전통적인 자유무역협정(FTA)이 아닌 다른 형식을 띨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WSJ은 백악관이 일 70여개국과의 신속 협상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1기 당시 주일 미국대사였던 빌 해거티 상원의원(공화·테네시)은 트럼프 행정부가 외국 정부로부터 특정 분야의 경제 개혁을 약속하는 서면 합의를 먼저 받고 나중에 필요할 경우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봤다.
이는 기업이 투자나 사업 거래를 정식으로 하기 전에 체결하는 의향서(letter of intent) 같은 형식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거티는 "협상 용어로 말하자면 일단 의향서가 있으면 협정에 들어간다는 걸 인지하게 된다"며 "90일 안에 최종 협상이 이뤄질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각 협정의 기본 틀은 정해지고 협상 후 합의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15개국이 상호관세 인하를 요구하며 구체적인 제안을 해 왔고 결승선에 가까워진 거래가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다른 나라들의 제안 중 대부분은 협상을 개시하기 위한 제안일 뿐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경제적인 제안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지난 10일까지도 백악관은 여전히 협상 전략을 수립하는 중이었다.
커틀러 전 USTR 대표는 "트럼프와 금융 시장을 모두 만족시키는 무역 협정을 체결하는 건 어마어마한 과제"라며 "트럼프 팀은 주요 국가에 우선순위를 두고 다른 국가에 대해서는 90일간의 (상호관세) 유예 기간을 연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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