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일본의 평화시대를 열다 [역사&오늘]

3월 24일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도 바쿠후 수립

본문 이미지 - 도쿠가와 이에야스 (출처: Kanō Tan'yū,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도쿠가와 이에야스 (출처: Kanō Tan'yū,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603년, 3월 24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현재의 도쿄)에 바쿠후(막부)를 세우고 260여 년간 지속된 에도 바쿠후 시대를 열었다. 이는 오랜 전국시대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일본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온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전국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그는 뛰어난 전략가이자 정치가로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하며 일본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등극했다. 이후 그는 에도에 바쿠후를 세우고 쇼군에 취임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중앙 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하여 바쿠부의 권위를 확립했다. 그는 다이묘들을 통제하기 위해 '무가제법도'를 제정하고, 참근교대 제도를 실시해 다이묘들의 힘을 약화시켰다. 또한, 엄격한 신분 제도를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농업을 장려하여 경제적 안정을 도모했다.

에도 바쿠후 시대는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가 꽃핀 시기였다.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성장하면서 서민 문화가 번성했고, 가부키, 우키요에 등 독특한 예술이 발전했다. 또한, 유학을 장려하여 학문과 교육이 발전했고, 이는 일본의 지적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에도 바쿠후는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해외와 교류했지만, 점차 쇄국 정책을 통해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차단했다. 이는 일본 내부의 안정을 유지하고 서구 열강의 침략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쇄국 정책은 일본이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국제 사회와의 고립을 초래하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서구 열강의 압력으로 일본은 개항을 하게 됐고, 이는 에도 바쿠후의 몰락을 가져왔다. 바쿠후의 무능함에 대한 불만과 천황 중심의 새로운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메이지 유신이 발생했고, 결국 1867년 에도 바쿠후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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