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신윤하 이강 기자 = 노인들이 산불 피해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최근 대형 산불이 번지면서 사망한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자고, 진화 작업 도중 사망한 진화대원 역시 고령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의 인구 고령화 속에서 화재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재난 약자' 노인들에 대한 맞춤형 재난 관리 제도가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2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 기준 전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26명이 사망했고 중상자는 8명, 경상자는 22명으로 집계됐다.
이들 대부분은 60~80대 고령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들은 불을 피해 급하게 대피하다가 집 근처, 차 안 등에서 숨진 경우가 많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요양시설의 80대 입소자 3명은 차를 타고 대피하다가 차량 폭발로 사망했다. 영덕읍 매정리에선 80대 노부부가 집 앞 불과 1분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경북 영양에서도 대피하다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60대 여성 시신이 발견됐다. 경북 청송에선 거동이 불편한 80대 여성과 70대 남성이 자택 등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번에 산불 피해가 발생한 경북 지역의 경우 전국에서 고령 인구가 전남 다음으로 많다. 통계청 2024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경북 지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4.7%에 달한다. 이외 지역에서의 고령자 비율은 △전남 26.2% △강원 24.3% △전북 24.1% △부산 23.2% △경남 20.8% △충북 20.7% △충남 20.7%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문제는 고령층의 경우 산불이 났을 때 발 빠르게 대피하기 힘들어 인명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긴급 재난 문자를 받아도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고 거동도 불편해 자력으로 대피하기가 쉽지 않다. 휴대전화에 오는 재난 문자에도 익숙하지 않아 시시각각 상황을 확인하며 대피하긴 쉽지 않다.
게다가 강풍을 타고 산불이 순식간에 확산하고 연기도 자욱한 만큼 대피하기엔 촉박한 시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산간 지역 특성상 마을 진입로가 좁아서 산불이 일면 탈출할 길이 쉽게 막히고, 길이 험해 속도를 내기 어렵다.

게다가 지역 인구가 고령화되다 보니, 산불을 진압해야 하는 진화대원마저 60세를 넘긴 이들이 대다수다. 2022년 기준 전국 지자체가 고용한 산불 진화대원의 평균 연령은 약 61세고 65세 이상 비율은 33.7%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불예방전문진화대는 하루 8시간 근무에 1만 원 정도의 최저 시급만 받는 데다가 산간 지역에 젊은 인구가 적어 노령층의 지원이 많다. 과거엔 55세 연령 제한이 있었지만 인력이 없으니 폐지됐다.
고령의 진화대원들은 재난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다. 산불 진화 장비가 노후화됐을 뿐만 아니라, 진화대원 특성상 충분한 전문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로 현장에 투입된다. 진화대가 산림청이 아닌 지자체에 의해 산불 위험이 큰 봄철과 가을철 연중 6~7개월 정도만 '공공 일자리' 개념으로 운영되는 데다가, 법정 교육은 1년에 딱 한 번 이론 5시간·실전 5시간 이뤄져 전문성도 떨어지는 상태다.
지난 22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선 진화 작업을 하던 60대 진화대원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났다.
재난 약자인 노인들이 화재 사각지대에 놓여있단 지적이 제기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산골 지역에는 노인들만 살고 있어 고령화 수준은 초고령 사회 그 이상"이라며 "이번 인명피해도 연령이 높은 지역의 노인들이 빨리 화재를 피하지 못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산간 지역에 불이 날 때마다 발생하는 고령층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고령층의 특성에 맞는 화재 시 대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지에 사는 고령층 주민들과 담당 공무원을 매칭시키고 화재 시 공무원들이 주민들을 찾아 대피시키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하나의 예다.
정태현 경북도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이 어느 순간 급격히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관련 공무원 등이 관리해 어르신들을 근처 노인정에 대피시켜 공동 대응하는 게 옳았을 거라 본다"며 "65세 이상 고령층이 되면 상황 판단 능력이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각자도생하게 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뿐만 아니라 농어촌 지역은 고령자 비율이 높고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은데 재난대피 명령이 떨어지더라도 신체 능력 자체가 성인과는 달리 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자력 대피가 어려운 고령자들이 먼저 대피할 수 있는 체계를 공적으로 갖추고 대피를 조력할 수 있게 이웃·공무원들과 매칭시키는 등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화대원의 고령화 문제의 경우 단순히 이들의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교육을 전문화하고 열악한 진화 장비를 개선하는 게 급선무란 게 전문가들의 주된 의견이다.
정태현 교수는 "이번에 사고 나서 돌아가신 진화대원 분들은 지자체에 임시로 고용돼 화재 진압이나 산불에 지식이 없는 분들"이라며 "이런 급격한 상황이 생겼을 경우에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 훈련을 받은 분들이 팀에 1명 정도 있어서 그분들이 상황판단을 해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주 교수도 "많은 사람이 '나이 많은 분들이 불을 끌 수 있겠냐' 이렇게만 생각하지만 산불 진화대원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그 지역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느냐"라며 "나이의 문제라기보단 진화대원들이 역할에 맞는 지식과 체력을 다졌는지를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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