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형준 기자 = 정치권의 상법 개정 움직임에 중소·중견기업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까지 확대함에 따라 법적 분쟁이 증가하고, 기업들의 투자 의욕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투자자 보호와 기업 가치 제고라는 궁극적인 법 개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무분별한 소송과 경영권 분쟁 등 리스크가 증가할 수 있어 대응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들은 오히려 기업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4일 중소·중견기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야당은 투자자들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한 상법 개정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여야의 입장 차이가 큰 만큼 우원식 국회의장은 상법 개정안을 지난 2월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야당이 이달 개정안 처리 의지를 표하고 있어 불씨는 남아 있는 상태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배 주주의 전횡을 방지하고 소수 주주의 권익을 보호해 기업 신뢰도를 높인다는 취지다.
야당 측은 이번 상법 개정안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해 주식 시장을 선진화하고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수 있는 계기로 보고 있다.
반면 업계는 최근 국내 상장사의 경영권 분쟁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사의 주주 이익 보호 의무가 추가되면 분쟁에 대한 위협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최근 경영권 분쟁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경영권 분쟁 소송 건수는 315건으로 전년 대비 18.4% 증가했다.
분쟁이 발생한 87개 사 중 중소기업은 59개 사, 중견기업은 22개 사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의 35.3%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중견기업이 경영권 분쟁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대한상의 측은 중소·중견기업은 비교적 소액으로도 경영권 공격이 가능하고 분쟁 발생 시 대응 인력과 자금이 부족해 경영권 공격의 주요 타깃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중견기업계 가운데 30% 정도만 법무 조직을 갖고 있다"며 "상법 개정을 통해 소송이 증가하는 이슈가 있을 때 신속히 대응하고 리스크를 관리할 동력이 크게 부족하며 중소기업은 말할 나위가 없다"고 강조했다.

경영권 문제 외에도 주주들을 과도하게 의식해 기업이 의사 결정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투자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시점에서 투자가 실패했을 때 주주들이 배임 등 혐의로 문제를 삼을 수 있어 기업들이 '소신 경영'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투자를 잘못하게 되면 당연히 책임을 지게 되지만 배임 혐의 등으로 행동주의펀드를 중심으로 소송을 제기하게 되면 투자 자체를 망설이게 된다. 기업의 의욕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한국경제인협회가 600대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56.2%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투자가 줄어드는 등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긍정적일 것으로 보는 응답은 3.6%에 그쳤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영권 방어, 이사회 운영 등을 위한 비용 증가가 수반될 것이란 전망도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들의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업계는 기업의 신뢰도와 경쟁력 강화라는 취지에 집중해 기업을 키워 나가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기업 및 주주 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추문갑 본부장은 "기본적으로 기업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이번 개정안은 오히려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경쟁력을 갖춰야 가치가 올라가는 것인데 개정안은 밸류업과는 핀트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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