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과 교육개혁…'명절날 전 뒤집는' 악순환 멈춰야 [변기용의 교육 포커스]

편집자주 ...필자는 1991년 제3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후 경북대 교무과를 시작으로 교육부의 정책 기획 부서에서 16년간 근무하면서 실제 정책을 입안했다. 2002년부터 3년간 OECD 교육국(프랑스 파리)에서 상근 컨설턴트로 국제적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수행했다. 2008년에는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현재 고려대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한국근거이론학회 회장, 한국교육행정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본문 이미지 -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 대통령 탄핵이 인용될 경우 불과 두 달 안에 치러질 조기 대선을 놓고 벌써 물밑 작업이 분주하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된 후에나 나올 법한 주요 공약을 두고 겉으로는 정치권이 말을 아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조기 대선의 현실적 가능성이 커지게 되면서 교육 분야에서도 내밀하게 공약 작성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공약이 대선이라는 극도로 짧고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이른바 '51:49의 정치공학적 논리'에 따라 '정권만 가져오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졸속 결정되곤 한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공약은 '패거리 사고'(group thinking)를 하는 무리에 의해 극히 짧은 기간에 작성된다. 따라서 공익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자기 진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라는 철저한 파당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채택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졸속으로 만들어진 공약이 그대로 국정과제로 전환

이렇게 급조된 공약은 실제로 후보자가 정권을 잡은 뒤에는 '국민이 뽑은 당선자의 공약을 국민이 지지했다'는 논리로 이어져 국정과제가 된다. 이후 아무리 문제가 있어 보여도 공약 이행이라는 명분 아래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통한 타당성 검토 없이 교육 현장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일이 흔하다.

실제로 역대 정부에서 이런 유사한 사례가 여러 차례 반복됐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된 국립대 법인화 정책이나 문재인 정부의 공영형 사립대 도입 정책 등은 충분한 토론이나 검증 없이 '정권의 색깔'을 나타내는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설익은 정책이 그대로 추진됐다.

보수·진보 정권 여부와 관계없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명절에 전 부치듯 뒤집히는' 자사고(자율형 사립고) 정책도 마찬가지다. 자사고, 혁신학교라는 간판 자체를 바꾸는 게 교육정책의 혁신이 아니다. 어떤 학교가 실제로 학생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이를 위해서는 어떤 점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타당한지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그런데도, 정권마다 정치적 계산에만 매달렸다. 그런 와중에 공익은 뒷전이 되고 있다.

이념 차이를 교육개혁으로 호도하는 선출 권력

이렇듯 비슷한 문제들이 계속 반복되는 이유를 곱씹어보면, 교육정책 결정 과정에서 '견제 없는 선출 권력의 지나친 독주'가 가장 핵심적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정치권이 보수와 진보로 극단화되면서 새로운 정부는 과거 정부의 정책을 뒤집어버리는 것을 당연시하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즉 이들은 단순한 이념의 차이를 '교육개혁'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정파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의견을 내면 곧장 '개혁 저항세력'으로 매도한다.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였던 국정교과서 정책이나, 문재인 정부의 공영형 사립대 정책이 그런 '정치 논리 우선' 정책의 대표적 사례였다.

대통령실이 선출 권력이란 명분을 앞세워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이다. 더 큰 문제는 고위공무원단 제도로 인해 전문성을 갖춘 관료들도 정권의 기조에 반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영혼 있는 공무원'들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본문 이미지 -  자사고(자율형 사립고) 유지·폐지 정책은 보수·진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치적 계산에 따라 뒤집히는 대표적 교육 정책이다. ⓒ News1
자사고(자율형 사립고) 유지·폐지 정책은 보수·진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치적 계산에 따라 뒤집히는 대표적 교육 정책이다. ⓒ News1

교수·전문가 그룹의 책임과 한계

그렇다면, 이 같은 정치권력의 전횡을 제어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다른 축은 어디에 있는가. 당연히 학문 권력을 대표하는 '교수들', 전문가 그룹이 그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교수나 전문가들이 정부 정책에 대해 자문하거나,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공익보다 정권에 잘 보여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태도 때문에 전문가적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적 지적이 많다.

실제로 교육 분야에서 여러 '학자·전문가'가 캠프에 들어갔지만, 공약 수립 과정에서 정치공학적 셈법을 묵인하거나 동조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학문 공동체가 역할을 포기한다면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공익이 최우선되어야 할 교육정책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5·31 교육개혁안에서 찾는 '견제와 균형'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견제와 균형을 원칙으로 삼는다. 선출된 정치인, 직업 관료, 학자와 전문가 공동체가 서로 다른 전문성과 책무성을 갖고 정책을 검증하고 보완해야 한다.

사실 과거에는 어느 정도 이 원칙이 지켜지기도 했다. 올해로 발표 30주년을 맞는 5·31 교육개혁 방안이 한 예다. 김영삼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교육 대통령'을 자처했지만, 정권 초기부터 자신의 공약을 그대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수 전문가와 관료 조직에 힘을 실어주며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교육개혁안을 만들도록 했다.

성안된 이후에도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함으로써 제도와 법령을 정비해 나갔다. 무엇보다 '공약 발표 = 검증 완료'라는 식이 아니라 사회적 공론화와 전문가 검토를 통해 교육개혁안을 만들어 나갔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교육정책의 미래, '속도전'이 아닌 신중함에서

5·31 교육개혁안 발표 3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 사회는 탄핵 가능성에 따른 조기 대선이라는 비상시국하에 놓여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인들은 '선출 권력'에 걸맞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관료들은 국민 전체를 대표한다는 소명의식으로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학자·전문가들은 권력 기관을 감시하고 조언하며, 공익을 우선하는 비판적 동반자가 돼야 한다.

교육정책은 한 번 시행되면 당대 학생들뿐 아니라 미래 세대 전체의 학습과 성장을 좌우한다. 이제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전임 정부의 정책을 전부 부정하고 '명절날 전 뒤집듯' 하는 교육개혁 방식을 멈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공학적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과연 '해당 정책이 미래 세대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 측면에서 이를 판단하는 신중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조기 대선 정국이 찾아올 때 교육공약이 또다시 진영 논리에 지나치게 치우쳐 만들어지고 시행된다면, 그 피해는 오롯이 학생과 사회가 안게 된다. 이제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닌 중장기적 안목과 공익적 시각으로 교육정책을 설계·추진해야 할 때다. 5·31 교육개혁안이 보여준 '견제와 균형'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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