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뉴스1) 정은지 특파원 =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기간이던 지난 6일 오후,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회의센터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베이징 대표단 회의를 취재했다. 회의 말미 질의응답 중 마지막 질문이 베이징 대표단 일원인 레이쥔(雷軍) 샤오미 최고경영자(CEO)에게 향했다. 이날 행사 중 가장 많은 카메라 셔터 소리가 터졌다.
'샤오미는 어떻게 고품질 발전을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에 레이는 "베이징의 일류 비즈니스 환경이 없었다면 샤오미의 지난 15년 동안의 고속 발전과 성장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중국 제품의 글로벌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 "더 많은 혁신 제품을 글로벌 시장으로 가져가 과학기술 강국 및 제조 강국 건설에 기여하겠다" 등 상투적인 모범답변이 이어졌다.
이번 양회 기간 전인대 개막식에 참석해서도 그는 "민영기업에 대한 당 중앙의 관심과 지지를 느끼며 자신감이 생겼다"고, "중국식 현대화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했다. 국가 권력과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전형적인 '홍색 자본가'다. 5년 전 금융당국을 공개 비판했던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수년간 은둔 생활을 했고, 회사는 고강도 세무조사와 기업공개 무산 등으로 휘청거렸다. 레이도 똑똑히 봤을 것이다.
그러나 레이를 이렇게만 보고 만다면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2010년 저렴하고 뛰어난 스마트폰을 목표로 샤오미를 설립해 10년 남짓한 노력 끝에 애플과 삼성에 이은 세계 3위 스마트폰 기업으로 키운 '혁신가'다. 1969년 후베이성의 평범한 가정에서 총명한 아이로 자란 그는 우한대학교 시절부터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등 실리콘밸리 혁신가들을 동경한 뒤 창업의 길을 걸었다.
특히 고객과의 소통에 진심이다. 자신이 직접 모델로 나서 전기차를 홍보하고, 전기차 배터리에 적용한 특수 방탄 코팅의 안정성을 강조하려고 해당 코팅을 한 수박을 직접 6층 옥상에서 바닥으로 던지는 실험을 했다. 그래서 애플의 팬덤 못지않은 '미팬(米紛·샤오미팬)'이 생겼다. 최근 폐기물로 만든 생리대 등이 적발되자, 이들은 레이의 SNS로 몰려가 "샤오미에서 만들어주면 안되냐"고 떼를 썼다. 전자제품을 만드는 샤오미가 고도의 안전성이 필수인 자동차(전기차)를 3년만에 '뚝딱' 만들어도 믿고 탄다. 그가 걸어온 '혁신'과 '소통'의 길을 목격한 이들이 보내는 신뢰는 굳건하다.
초창기 샤오미 제품의 놀라운 가성비에 '대륙의 실수'라는 재치 가득한 찬사가 붙었다. 사실 샤오미 배터리나 스마트폰에만 해당할 일이 아니다. 레이 같은 글로벌 혁신가가 중국에서 등장했다는 것이야말로 더 주목할 '대륙의 실수'다. '홍색 자본가'로 살아가는 게 현명한,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가 일천한 중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국에서 레이에 견줄 만한 혁신적 기업인이 등장한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성공했겠느냐'는 자조엔 혁신을 가로막는 다양한 국내 기업 환경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마침 미국의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의 털시 개버드 국장이 25일(현지시간) 상원 청문회에 나와 "중국은 미국의 가장 유능한 전략적 경쟁자"라고 했다. 같은 날 공개된 DNI 보고서는 "중국은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공지능(AI) 강국 자리에서 밀어내기 위해 다면적인 국가 차원의 전략을 추진 중"이라고 평가했다.
이렇듯 중국을 재평가하고, 경계하고, 대비하고, 경쟁하는 미국의 모습은 매우 진지하다. 우리가 '중국을 우습게 보는 유일한 나라'라는 한물간 우스갯소리를 지금처럼 웃음거리로만 삼다가는, 글로벌 혁신 경쟁에서 모든 나라들이 우습게 보는 유일한 나라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

ejju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