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오동통한 제주 고사리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 4월이 시작되면 소방 당국도 덩달아 긴장한다.
'고사리 삼매경'에 빠져 땅만 보며 한참을 전진하다 고개를 들면 내가 어디서 온 건지조차 가늠 안 되는 숲과 덤불 속에서 119를 찾게 돼서다.
잘 말린 제주 고사리는 같은 무게의 한우보다 값을 비싸게 쳐줘 이맘때면 너나 할 것 없이 고사리 채취에 열중하면서 길잃음 사고가 속출한다. 아예 고사리를 위해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있을 정도다.
5일 제주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53분쯤 서귀포시 난산리에서 60대 여성 A 씨가 실종돼 2시간째 찾고 있다는 일행 신고가 접수됐다.
설상가상 A 씨는 휴대전화도 없이 고사리를 꺾다 홀로 사라졌다. 다행히 출동한 구조대와 구조견이 40여분 만에 A 씨를 발견했고, 건강에 이상이 없어 보호자에 인계됐다.
지난 1일에는 올해 첫 번째 고사리 실종자가 발생했다. 서귀포시 표선면에서 고사리를 꺾으러 간 80대 남성이 실종돼 소방 당국이 20분 만에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해 발견했다.
고사리는 인적이 드물고, 지형지물 분간이 어려운 중산간 지대, 곶자왈 등에 주로 분포해 제주소방은 매해 봄이 되면 '길 잃음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하고 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제주에서 발생한 길 잃음 사고는 511건이다. 이 기간 1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특히 이 중 고사리를 꺾다가 길을 잃은 경우가 무려 212건(41.5%)을 차지했다. 고사리가 질겨져 맛이 없어지는 초여름이 오기 전인 3~5월에 전체 사고의 60%가량이 발생했고, 4월(193건)에 집중됐다.

특히 이날처럼 봄비가 내린 뒤를 더욱 주의해야 한다.
제주에는 4월을 전후로 내리는 비를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봄비가 산과 들판을 적시고 나면 하루 만에 고사리가 쑥 자라나서다.
이미 '선수'들이 다녀가 더 이상 꺾을 고사리가 없을 것 같은 들판에도 봄비가 오고 나면 거짓말처럼 여린 고사리가 우뚝 자라나 있다.
봄철이면 고사리를 9번이나 꺾을 수 있다고 해서 '고사리는 아홉 형제'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고사리를 꺾으러 갈 땐 항상 일행과 동반하고, 자주 고개를 들어 너무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휴대전화와 보조 배터리를 챙겨 방전에 대비하고, 호루라기 등 주변에 위치를 알릴 장비를 챙겨야 한다.
오랜 시간 헤맬 경우 부상의 위험이 있는 만큼 자신의 위치를 빨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119에 신고할 때는 도로명판의 도로명과 기초번호, 전신주에 적힌 번호, 주변 건물의 번호판이나 간판 전화번호를 말해주는 것이 신속한 수색에 도움이 된다.
제주소방안전본부 관계자는 “길 잃음 안전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단독행동을 피하고 항상 일행과 함께 이동해야 한다”며 “특히 길을 잃었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119 신고 후 기다려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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