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교수 =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인구의 고령화다. 2025년 현재 65세 이상 고령자는 이미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다. 고령자 1000만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자기 건강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의 구강건강 문해력(oral health literacy) 수준은 일본보다 심각하게 낮다. 구강은 단지 음식물 섭취의 출발점이 아니라, 전신건강과 직결되는 선천면역을 담당하는 중요기관이며, 우리 몸에서 상시 염증이 일어나는 고령자 건강관리의 시발점이다.
1989년, 일본 후생성과 치과의사협회는 ‘80세에 20개의 자연치아를 유지하자’는 8020 캠페인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 고령자의 평균 자연치아 수는 10개 이하에 불과했다. 하지만 30년 이상 지속된 이 운동을 통해, 현재는 80세 이상 노인의 절반 이상이 20개 이상의 치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 자연치 개수 20개가 캠페인의 목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치아가 20개 이상이면 대부분의 딱딱한 음식을 틀니 없이도 충분히 먹을 수 있어, 임상적으로 치아 20개 이상을 ‘기본 저작기능 보존 임계선’으로 본다. 20개 이상 자연치아를 유지한 고령자는 BMI가 안정적이며, 혈중 알부민 수치 등 영양지표가 양호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씹는 능력과 발음 능력이 유지되면 사회활동 참여율과 자기효능감(self-efficacy)도 높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20개 이상의 자연치아를 가지고 있는 고령자는 흡인성 폐렴 발생률이 낮다.
치아를 통해 음식을 잘 씹을 수 있어야 영양섭취가 원활하고, 뇌도 자극받아 인지 기능도 유지된다. 또한 말하기, 웃기, 표정짓기 등 사회적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은 이를 국민적 캠페인으로 발전시켜, 예방 중심의 구강관리 문화 정착에 성공했다. 8020은 단순한 건강증진 구호가 아니라,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성과로 전 세계 보건정책의 주요 성공사례다.

일본에서는 ‘구강 노쇠(oral frailty)’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다룬다. 이는 치아 상실이나 잇몸병을 넘어서, 혀의 근력 약화, 씹는 힘 감소, 구강건조로 인한 구강위생 불량, 발음과 삼킴 기능 저하 등 구강 기능 전반이 노쇠한 증상이다. 일본 도쿄대 이지마 교수가 일본 지바현 가시와시(千葉県 柏市) 거주 65세 이상 고령자 약 2000명을 대상으로 10년 넘게 추적 관찰하면서 2017년 발표한 개념이다.
구강 기능 약화는 고령자의 영양 섭취 감소, 근감소증, 흡인성 폐렴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또 발음이 부정확해지면서 사회적 고립이 발생하고, 이는 우울증과 인지기능 저하의 위험을 높인다. 고령자에게 구강노쇠는 단지 입 안의 문제가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이자 삶의 질의 문제다.
구강관리는 단순한 위생 문제가 아니다. 씹기, 삼키기, 말하기, 침 분비 같은 기능이 종합적으로 유지되어야 일상생활의 자립이 가능하다. 또한, 구강 내 유해균은 혈류를 타고 전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고령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칫솔질 교육을 넘어서야 한다. 정기적인 구강검진과 치과치료, 틀니 점검, 일상의 올바른 구강관리에 대한 지식과 실천 등 예방적이고 통합적인 구강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고령자의 구강건강은 국민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재정을 건강하게 하고, 삶의 질 향상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가치와 연결된다.
고령자의 건강한 삶은 구강건강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입 안의 작은 기능이 무너지면 식사, 대화, 감정 표현, 건강관리까지 무너진다. 치아가 빠지면 삶의 자신감도 함께 빠진다. 일본의 8020 캠페인이 보여주듯, 구강건강 문해력 증진과 예방관리 중심의 보건복지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건강수명은 단순히 생존하는 ‘기대수명’이 아니라, 질병이나 장애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한다. 한국 사람의 기대수명은 약 83.6세 (2023년 기준)이지만 건강수명은 약 73.1세로 마지막 10여 년은 병상에 있거나 병원을 벗 삼아 지내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지역사회 통합돌봄에서 구강 노쇠 예방관리를 통한 건강수명 연장이다. 입을 지키는 것이 곧 몸 전체를 지키는 길이다. 이제 구강건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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