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시각예술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김아영의 신작 개인전 '플롯, 블롭, 플롭'(Plot, Blop, Plop)이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21일부터 6월 1일까지 개최된다.
김아영은 현실의 사건을 소재로 삼아 가상의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작가다. 신선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경험을 통하지 않고 순수 이성으로 인식하는 '사변적 픽션'(Speculative Fiction)이라는 비평적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28분짜리 영상 '플롯, 블롭, 플롭'은 석유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플롯, 블롭, 플롭'은 '구획, 방울, 퐁당'이라는 의미다. 중동 지역의 석유를 가지고 이야기를 펼쳐내는 '플롯'은 구성(줄거리)의 의미를 담고 있다. '블롭'은 석유라는 질료의 점성을, '플롭'은 석유 방울의 파동을 소리로 상징한다.

이야기는 1970년대 석유 자원의 무기화라는 지정학적 이슈 속에서 원유 가격이 3배 이상 오른 '사건'에서 시작된다. 이에 한국의 한 건설사는 경영 타개책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아파트 건설공사 프로젝트에 뛰어든다. 이는 국가와 회사에는 중동 진출이라 빛나는 성과다. 하지만 그 직원과 가족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잠정적 이별'이기도 하다.
그렇게 탄행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알 마터 아파트'는 다중적인 공간이 된다. 역사의 현장에서 이 아파트가 겪는 다양한 풍파는 영상과 소리와 사람들의 육성을 통해 관객에게 오롯이 전해진다. 석유자본의 형성과 이동, 한국 기업들의 중동 특수, 석유파동과 걸프전, 난민 피난처와 부촌으로의 변모 등 석유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의 정보적 편린이 다층적인 서사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렇게 근현대의 '거시사'와 '미시사'를 조망이다. 역사책에는 '건설사의 중동 진출'이라는 단 한 줄로 들어가지만, 그 구절 안에 숨어 있는 다양하고 다각적인 관점의 이야기를 작가의 관점에서 끄집어내고 상상력으로 채워 예술로 풀어내는 것이다.

작가 아버지의 경험과 기억, 오랜 기간에 걸친 자료 조사와 현장 방문, 그리고 작가가 만난 인물들의 생생한 인터뷰가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몰입감을 준다.
영상 끝부분 등장하는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 서 있는 젊은 아버지와 크레딧에 흐르는 영가풍의 노래는 근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지난한 시간을 감내하며 살아온 가족, 더 나아가 동시대를 살아간 우리 모두에 대한 작가의 헌사로 풀이된다.
김아영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 미래상 (2024),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카' 골든 니카상 (2023) 등을 수상했다. 지난달에는 LG 구겐하임 어워드에도 선정됐다. 그의 작품은 영국 테이트 미술관, 오사카국립미술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콜렉션, 샤르자 아트 파운데이션, 카디스트 재단, 서호주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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