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미완의 대기'에 가까웠던 허수봉(27)이 드디어 날아오르자, 현대캐피탈의 전력은 완벽해졌다. 올 시즌 현대캐피탈의 압도적인 1위를 이끈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허수봉이었다.
현대캐피탈은 22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4-25 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1(25-27 25-23 25-18 25-21)로 승리, 시즌 전적 26승4패(승점 76)가 돼 남은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정규시즌 1위를 확정했다.
지난 시즌 4위로 포스트시즌에 '턱걸이'한 뒤 한 경기만에 탈락한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 강력한 위용을 자랑했다. V리그의 장수 외인이자 '레전드'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의 영입과 세터 황승빈, 리베로 오은렬의 영입, 여기에 '명장' 필립 블랑 감독에 지휘봉을 맡기며 팀 전체적으로 단단해졌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레오가 또다시 우승을 안겨줄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였고, 실제 레오는 여전한 위용을 과시했다. 레오는 현재까지 득점 2위, 공격종합 2위, 오픈공격 1위 등을 기록하며 3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레오만으로 이렇듯 압도적인 시즌을 보낼 수는 없었다. 레오를 뒷받침해 줄 국내 공격수의 활약이 절실했는데, 허수봉이 이를 완벽히 해냈다. 정확하게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주역으로 자리 잡으며 레오와 '쌍포'를 이룬 활약이었다.
허수봉은 이날 경기 전까지 득점 4위, 공격 종합 4위, 오픈 공격 5위, 퀵오픈 4위, 후위 공격 2위 등에 올라있다. 대부분의 지표에서 국내 공격수 중 1위이고, 외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성적을 올렸다.

현대캐피탈을 상대하는 입장에선 여간 곤욕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외인급의 괴력을 뽐내는 공격수가 두 명이나 있으니, 어느 한쪽에 치중한 수비를 하기도 어려운 노릇이었다.
올 시즌 허수봉의 특별한 강점은 백어택과 서브다. 이 분야에선 레오보다도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백어택은 111번을 성공시키면서 61.67%의 성공률을 보여 알리 하그파라스트(우리카드)에 이은 2위이고, 서브는 세트당 평균 0.394개를 성공시켜 리그 전체 1위다.
백어택과 서브는 경기 흐름을 확실하게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높다. 허수봉을 활용한 현대캐피탈의 중앙 백어택 전술, 중요할 때마다 상대 코트에 꽂혔던 허수봉의 강력한 서브는 팀 전체 사기를 올려주는 힘이 됐다.
2016-17시즌 데뷔한 허수봉은 이미 2번이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맛보기도 했다. 루키 시즌과 2018-19시즌, 데뷔 후 3시즌 간 2번의 우승을 맛봤다.
하지만 그 두 번의 우승에서 허수봉이 주역은 아니었기에, 이번 시즌과는 확연히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허수봉 스스로도 마음고생이 컸다. 일찌감치 남자 배구의 미래를 책임질 '거포'로 낙점받았지만, 기대만큼 성장 폭이 빠르지 않았다.
최근 몇 시즌 동안은 시즌 중 아포짓 스파이커와 아웃사이드 히터, 미들블로커를 오가는 등 팀 내에서의 애매한 활용으로 혼란을 겪었고, 무릎을 비롯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허수봉은 좌절하지 않았다. 수 차례의 포지션 변경에도 늘 제 몫을 해냈고, 매 시즌 조금씩이나마 발전하는 모습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 시즌 데뷔 이후 처음 '베스트7'에 선정된 그는 올 시즌에 앞서 열린 KOVO컵에서도 연일 활약을 이어갔고, 팀의 우승과 함께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개막 이후에도 여전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현재까지 유력한 정규시즌 MVP 후보다. 만일 허수봉이 MVP를 수상한다면 '토종 거포'로는 2020-21시즌의 정지석(대한항공) 이후 4년 만이다. 정지석 이후 남자부 MVP는 외국인 공격수(케이타, 레오), 세터(한선수)가 수상했다.
허수봉의 경쟁자가 있다면 팀 동료 레오 정도다. 지난 시즌 OK저축은행에서 MVP를 받았던 레오 역시 현대캐피탈의 우승에 없어선 안 될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시즌 허수봉이 보여준 성장세와 팀 내 영향력 등을 고려하면 허수봉의 MVP 수상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대캐피탈이 정규시즌 1위를 확정 지은 이날 경기에서도, 허수봉은 팀 최다 28점으로 맹활약하며 레오(22점) 이상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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