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2월 임시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 처리를 예고하면서 여야 상법 전쟁이 재점화됐다. 국민의힘은 이사 충실 의무가 적시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기업의 자율성 침해는 물론이고 투기 자본이 판칠 것이라고 반발한다. 다만 개미투자자의 여론을 고려해 본회의에서 통과되더라도 재의요구권은 요청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1소위원회는 전날 민주당이 올린 15개의 상법 개정안을 심사했다. 당론 법안인 이정문 의원의 안이 주로 논의됐으며, 회의 후반부에는 박균택 의원의 안이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심사 내용이 방대해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의 줄기는 '일반 주주 보호' 원칙의 명문화다. 이정문 의원안은 기업 이사회의 주주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한다.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공평의무 조항도 담겼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도 포함됐다. 집중투표제란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 수만큼의 투표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몰표도 가능하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이란 선출 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묶어두는 제도다. 전자주주총회 방식 도입도 포함됐다.
박균택 의원안의 경우 이사의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 조항이 추가된 만큼, 당론보다 더 강력하다는 평가다.
민주당은 소액 주주 보호를 위해 상법개정안 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현 상법 체계에선 내부 비리가 발생하거나 인수합병에 따른 주가 하락 등이 발생하더라도 소액 주주는 별다른 방어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 두산밥캣 사례가 대표적이다.
상법 개정안은 개미로 불리는 소액 주주들 사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이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만큼, 통과될 경우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된 상황에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며 "개인 투자자들은 상법 개정을 바라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기업의 경영 활동에 족쇄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주의 이익 보호'를 명문화할 경우, 불필요한 소송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보수적인 경영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다.
재계에선 '주주의 이익 보호'라는 법 조항을 고리로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침탈 사례가 빈번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22일 법안소위에서도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같은 이유로 상법 개정안을 강하게 반대했다. 장동혁 의원은 뉴스1에 "'모든 주주의 이익은 보호돼야 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라며 "장기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인수합병도 있는데, 그로 인해 당장 주식이 떨어져서 손해봤다고 할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소수 주주의 이익도 보호되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될 때는 다수 주주의 의사에 따라 회사의 이익을 위해 결정해야 한다"며 "자본시장법 등 실질적으로 소액 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조항을 두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소액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금융위원회와 논의 후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권상장법인 간 합병 시 기존의 가액 산정기준이 아닌 주식 가격·자산 가치·수익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하고, 상장기업이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주주에게 주식을 우선 배정하는 '핀셋 규제'다.
민주당은 다음 법안소위에서 상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할 전망이다. 지난해 "자본시장법 개정이 이뤄지면 굳이 상법 개정은 필요 없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힌 이재명 대표마저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건 필요한 일"이라며 강경 태세로 돌아섰다. 사실상 '그린라이트'가 켜진 셈이다.
국민의힘은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요청 방침을 정하지 못했다. 여당 안팎에선 다른 법안과 다르게 재의요구권 요청을 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개인투자자만 약 14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내에선 지지율 상승 국면에서 중도층을 자극하긴 부담스럽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개인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주장해 온 상황이라 재의요구권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다만 정부가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어 여당의 요구 없이도 거부권을 쓸 여지는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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