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집서 식어간 8살 꽃…1.2억 '양육수당' 유흥비로[사건의 재구성]

질병 방치 8살 아이 사망…열흘 전 학대 정황 포착
세탁기 없는 쓰레기집서 방치…한 살배기 술 먹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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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숨을 쉬지 않아요."

(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 지난해 4월 4일 오전 11시 22분쯤 강원소방 상황실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발신지는 강릉시 노암동의 한 주택. 신고를 받은 구급대원이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아이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숨진 아이는 당시 8살 된 A 군. 신고를 한 남성은 A 군(8)의 어머니 B 씨(34)의 지인이었다.

웅크린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던 A 군에게선 이미 사후강직 현상이 나타나 있었다. 숨진 아이의 왼쪽 눈엔 옅은 멍 자국도 보였다. 채 피지도 않은 이 꽃은 어쩌다가 차갑게 식어갔을까.

2년간 질병 방치…아이 숨진 날 아빠는 놀러 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A 군의 사인은 평소 앓고 있던 신부전 악화였다. A 군은 숨지기 약 2년 전쯤인 2022년 5월 동네 병원에서 신부전 의심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의사는 "상급병원에서 진료받아야 한다"고 권유했지만, 엄마 B 씨와 아빠 C 씨(37)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방치해 병세가 심해졌다. 아이가 떠나던 날 아빠 C 씨는 춘천으로 놀러 갔다. A 군이 숨지기 전날 의사로부터 "수액을 꼭 맞아야 한다"는 신신당부를 들었지만 이를 무시했다.

방치를 당한 것은 A 군뿐만이 아니었다.. A 군의 동생 D 양(5)에겐 사시 증상이 있었지만, 부모는 수 차례 치료 권고에도 방치했다. B 양은 결국 중증 내사시에 이른 채 살아가게 됐다.

본문 이미지 -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전경.(뉴스1 DB)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전경.(뉴스1 DB)

세탁기도 없는 쓰레기집…한 살배기에 술 먹이기도

부모의 방치 속 차갑게 식어갔던 A 군에게 필요했던 건 단지 최소한의 보살핌과 곰팡이 없고, 담배 찌든 냄새가 나지 않는 작은 안식처뿐이었다. A 군 등 7남매가 자란 집은 보금자리라기보단 '꽃제비 촌'에 가까울 정도로 참혹한 상태였다.

집안엔 쓰레기가 쌓여있고, 난방은커녕 곳곳에 곰팡이가 득실거렸다. 아이들 부모와 지인은 이곳에서 매일 술을 퍼부었다. 아이들 몸엔 늘 '담배 찌든 냄새'와 습하고 역한 냄새가 배어 있었지만, 옷을 빨지도 못했다. 집에 '세탁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생활하는 동안 부모는 술을 퍼부어대고 노래방을 가는 등 유흥을 즐겼다. 아이들은 툭하면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이로 인해 체중이 불과 같은 나이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들 부부와 함께 살던 지인 E 씨는 아이들에게 효자손으로 무차별 폭행하거나 '만 1세'에 불과한 아이에게 술을 먹이기도 했다. C 씨는 또 '자신의 약을 먹었다'는 이유로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있는 아이의 목을 조르며 폭행하기도 했다.

사망 열흘 전 학대 정황…경찰 조사 직전 숨져

숨진 채 발견된 A 군에게 들어있던 멍자국. 경찰은 학대를 의심하고 부부를 상대로 수사를 시작했고, 결국 이들 부부와 지인 2명은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아동학대치사)로 구속기소됐다. 이 멍자국이 A 군의 결정적 사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악마도 울고 갈 부모와 그 지인들의 아동학대 행위가 드러났다.

검찰 조사 결과 B 씨 부부는 2023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13회에 걸쳐 아이들을 폭행했다. 부부의 지인 E 씨는 2023년 1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아이들에게 30회 걸쳐 폭행과 위협을 했고, F 씨는 2023년 10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17회에 걸쳐 상습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A 군의 멍자국은 이미 사망 열흘 전 담임교사가 발견했다. 당시 교사는 아동학대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 당일 경찰과 강릉시청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학교에 찾아가 A 군을 만났지만, 아이는 별다른 진술을 하지 않았다.

A 군의 부모는 경찰에 "아이들끼리 장난치다가 눈을 부딪쳤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A 군의 형제들은 "'삼촌'(부부 지인)이 던진 책에 맞아 눈에 멍이 생겼다"고 엇갈린 답변을 했다. 이에 강릉시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이들의 아동학대 의혹에 대한 조사가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그사이 A 군은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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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450만 원 수당 유흥비로…아이들 명의로 휴대전화 사 되팔아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7남매'를 키운 엄마 B 씨의 직업은 '무직' 아빠 C 씨는 '일용직'이었다. 이들은 무슨 돈으로 7남매를 양육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주민들 또한 매일밤 술을 먹고 흥청망청하는 이들을 보고 "직업도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돈이 있어서 저렇게 먹고 노느냐"며 우려했다고 한다.

조사 결과 이들은 지자체로부터 생계와 주거급여, 양육 수당 등 매달 450만 원 안팎의 지원금을 받아 생활했다. 사건 발생 전까지 이들이 지원받은 금액만 약 1억 2300만 원 정도. 그러나 이 돈은 아이들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 유흥비로 탕진됐다.

이들 부부는 이 지원금마저도 부족해지자 아이들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되팔아 생활비로 쓰기도 했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통신비 내역 연체가 발생하기도 했다. 부모의 구속으로 남겨진 아이들은 휴대전화 요금 연체 때문에 후견인 지정에 애를 먹기도 했다.

"아이들 보고 싶다" 울더니…"15년은 과해" 곧장 항소

재판에 넘겨진 엄마 B 씨는 "지난날을 반성하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엄마의 돌봄이 필요하다"며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참작해 달라"고 눈물을 쏟았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강릉지원은 "범행의 결과가 매우 참혹하다"며 B 씨 부부에게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12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 아동 관련기관에 10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또 지인 E 씨에겐 징역 5년, F 씨에겐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며 울던 B 씨는 재판부의 선고에 '형량이 무겁다'고 즉각 항소했다. 올 초 열린 2심에서 재판부는 "사건을 다시 한번 면밀하게 살펴봤으나 원심 양형은 적정하다. 피고인들 형량이 너무 무겁거나 가볍다고 보긴 어렵다"고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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