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끝날 것 같지 않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종전 협상이 진전을 보이면서 종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종전 가능성에 국제사회가 모두 기뻐할 것처럼 보였으나 유럽 국가들은 미국 주도하에 이뤄지는 종전 협상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그동안 국제적 현안 등에 대해 뜻을 같이하면서 '미국은 유럽의 전통적인 우방국'이라는 인식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비롯해 많은 지원을 해왔지만 정작 종전 협상에서 유럽은 제외되면서 '찬밥' 신세로 전락한 탓도 있다.
첫 해외 일정으로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한 연설은 미국과 유럽의 관계에 경종을 울렸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유럽 안보에 대해 논의를 예상했으나 밴스 부통령이 유럽의 이민정책과 표현의 자유 등을 비판하며 유럽에 화살을 겨눴기 때문이다.
밴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도력 아래 새로운 보안관이 등장했다"며 중국과 러시아 등 외부 요인이 아니라 유럽 내부에서 민주주의와 안보가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밴스 부통령은 그 예로 유럽의 이민정책을 언급하며 "이 대륙의 어떤 유권자도 수백만 명의 검증되지 않은 이민자들에 문을 열어주기 위해 투표하지 않았다"고 말해 반이민 성향 정당과 그 지지자들을 옹호했다. 반이민 정책은 유럽 내 극우 정당들이 주장하는 정책이다.
또한 밴스 부통령은 "민주주의는 국민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신성한 원칙에 기반을 둔다"며 독일에서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와의 협력을 거부하는 것을 비판했다.
밴스 부통령은 연설 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만남은 거부하고 알리세 바이델 AfD 대표와 회동했다.

미국의 유럽에 대한 태도 변화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유럽이 자신의 앞마당에서 3년째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협상에서도 제외될 조짐이 보여서다.
'24시간 내 종전'을 공언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되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협상에 주력하고 있다.
당장 미국과 러시아 고위 관계자들이 다음 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회담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자리에는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도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방위비 분담금 목표치를 국내총생산(GDP)의 5%로 증액할 것을 요구하면서 유럽 안보는 유럽이 책임지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더 이상 유럽을 예전과 같은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유럽의 안보를 지원하는 데도 과거만큼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음을 방증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의 종전 계획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논의한 사실을 언급하며 "그는 단 한 번도 '미국이 유럽과 함께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며 "이 말은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옛날은 끝났다. 이제 미국은 과거처럼 유럽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미국과 러시아가 단독으로 종전 협상에 나설 경우 영토 양보 등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에게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진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에 오는 24일에는 유엔 차원에서 총회를 열어 러시아군 철수 및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이다.

유럽은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숄츠 총리는 "나치를 경험한 독일 민주주의 정당들은 공동의 합의를 가지고 있다"며 "극단 극우 정당에 대한 방화벽이 그것"이라고 밴스 부통령의 발언을 반박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밴스가 유럽 일부의 상황을 권위주의 국가와 비교했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 유럽 관리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안한 '광물 협정 초안'을 언급하며 "미국의 접근 방식은 마치 19세기 벨기에의 아프리카 식민지 정책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유럽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구책 마련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유럽은 우크라이나와 루이의 안보에 관한 자체적인 행동 계획을 긴급히 마련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다른 글로벌 강대국들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지금 준비해야 하고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고 주장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 지도자들과의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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