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서울대 치과병원 교수 = 일상생활이 어려운 고령자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2008년 한국에서 처음 시행된 장기요양보험은 이제 15년 차 복지제도로 자리 잡았다. 이 제도는 65세 이상 노인 또는 65세 미만이더라도 치매, 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성 질병으로 6개월 이상 혼자 일상생활이 힘든 사람을 수급 대상자로 지정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한다.
현재 약 110만 명의 수급자가 등급 판정을 받아 요양원에 입소하거나, 자택에서 요양보호사의 방문을 받거나, 주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는 등의 형태로 돌봄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복지용구 지원, 치매가족휴가제, 인지활동형 방문요양 등 다양한 혜택이 제공된다.
건강보험에 가입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동으로 장기요양보험에도 가입된다. 2025년 기준, 장기요양보험료는 건강보험료의 12.95%를 차지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이들이 건강보험은 잘 알면서도 장기요양보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특히 매달 납부하는 건강보험료에 장기요양보험료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2024년 12월, 보건복지부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규칙 제38조에 따라 '장기요양기관 평가방법 등에 관한 고시'를 개정하고, 시설급여 평가지표에 ‘구강관리’와 ‘호스피스’ 항목을 신설했다. 이는 수급자의 구강 건강과 임종 돌봄을 제도적으로 챙기기 위한 조치다.
유사 제도인 일본의 장기요양보험(개호보험)을 살펴보면 세부내용을 파악하기 쉽다. 해당제도는 '자립 지원'을 핵심 가치로 삼는데 단순히 돌봄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능한 한 자신의 힘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익숙한 내 집에서 살아가고(living in place), 내 집에서 나이 들며(aging in place), 마지막까지도 집에서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dying in place)할 수 있게 구강관리를 비롯한 여러 서비스를 제공한다.
집에서 돌보다가 어쩔 수 없이 요양시설을 이용해야 된다면, 어떤 요양시설을 선택해야 할까? 입소문이나 인터넷 후기, 전화 문의만으로는 잘 알 수 없다. 심신이 힘든 고령자를 자주 옮길 수 없으니 요양시설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요양시설 평가등급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등급은 최우수 A등급부터 미흡 E등급까지 나뉘며, 전국 760여 개 시설 중 본인 삶의 동선과 가까운 A등급 요양시설을 찾아보자. 후보시설이 정해지면, 직접 방문하여 가장 먼저 ‘냄새’를 확인해 보자. 요양시설의 악취는 입소자의 머리, 구강, 생식기, 침구류 등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청소 상태, 환기, 위생 관리, 돌봄의 세심함을 반영한다. 욕실이나 방의 청결도, 침구와 의류 상태, 바닥 먼지 등도 꼼꼼히 살펴보자. 구석진 곳일수록 시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그다음은 어르신들의 표정을 관찰하자.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앉아 있는지, 직원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지, 아니면 주변을 경계하거나 움츠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자. 말보다 얼굴이 먼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또한, 돌봄 제공자들의 태도와 직원 간의 소통이 자연스럽고 명랑한 분위기인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가능하다면 식사 시간에 맞춰 시설을 방문해 보는 것이 좋다. 어르신들이 식사를 어떻게 하시는지, 음식이 따뜻하게 제공되는지, 스스로 식사하실 수 있는지, 혹은 서두르는 분위기는 아닌지 등을 살펴보면 그 시설의 실제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케어(care)는 치료(cure)와는 달리 일상생활 보조 서비스로 구성되며, 그중에서도 먹는 것이 전체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방문해 보자. 매번 비슷한 돌봄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어르신의 상태나 취향이 반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좋은 돌봄은 좋은 사람이 지속해서 머무를 때 가능하다. 직원의 근속 연수가 길고 이직률이 낮은 시설은, 어르신이 낯선 환경에서 느끼는 불안을 줄이고 돌봄 제공자와의 신뢰를 형성할 수 있어 매우 중요하다.
결국 좋은 요양시설을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건물이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조직문화다. 따뜻한 손길과 존중 어린 말로 이루어지는 돌봄은 어르신의 삶을 더욱 편안하게 한다.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공간의 냄새도 맡아보고, 어르신과 돌봄 제공자들의 표정, 더 나아가 일터의 분위기까지 꼼꼼히 살펴보자. 요양보호사들이 활기차고, 자기 일에 자부심과 만족을 느낄 때 비로소 진심 어린 돌봄이 가능해진다.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 지속되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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