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이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814억 원의 '잭팟'을 터뜨렸다. 지난 2015년 스톡옵션을 받은 지 10년 만이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김 부회장은 지난해 8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시한 만료를 4개월 앞두고 주당 1만1430원 가격으로, 99만2161주에 대한 스톡옵션을 행사했다. 당시 메리츠금융지주의 주가는 9만3000원 내외로, 평가차익만 814억 원에 달한다. 역대 최대 규모의 스톡옵션이다.
스톡옵션은 창업 성공 스토리가 잦은 IT 업계에서는 흔한 보상 방식이지만 성장이 더딘 금융업계에서는 흔치 않다. 스톡옵션이 '잭팟'이 되려면 회사가 그만큼 성장을 일궈야하기 때문이다.
김용범 부회장이 2015년 스톡옵션을 받은 후 10년 동안 회사의 당기순이익은 10배, 시가총액은 25배 커졌다. 행사가격이 1만원대였던 김 부회장의 스톡옵션은 9만원대 '로또'가 됐다.
지난 2011년 1월 삼성 출신의 김용범 전무는 메리츠종금증권에 최고재무관리자(CFO)로 합류했다. 같은 해 11월 부사장 승진에 이어 이듬해 5월 메리츠종금증권 대표에 올랐다.
2013년 12월에는 메리츠금융지주 대표를 겸직하고, 2015년 1월부터는 메리츠화재 대표를 맡았다. 2017년 12월에는 메리츠금융 부회장이 됐다.
전문경영인으로 초고속 승진을 이어오면서 메리츠금융은 2015년 3월 김 부회장에게 억대 연봉 외에도 123만2000주 규모의 스톡옵션을 지급했다. 그룹 우수 경영진의 책임경영을 강화, 지속적인 회사 성장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보상책이었다.
당시 경영진들이 중징계를 받고도 수십억 스톡옵션을 받거나 '먹튀'하는 일이 잇따르면서 스톡옵션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면서 행사 기준이 까다로워졌다. 행사가격도 높아졌다.
김 부회장의 경우, 스톡옵션 행사가는 1만820원이다. 당시 메리츠금융 주가는 1만1000원 내외를 오갔고, 3개월 전인 2015년 초에는 9350원이었다.
향후 5년간 계속 근무해야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그 경우 2020년 1월 1일부터 2024년 12월 31일 사이에 행사가 가능했다. 스톡옵션 행사 시점에 글로벌 경영 위기가 올 수도 있고, 10년 동안 사업 환경이 급변할 수도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김 부회장이 경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스톡옵션이 로또가 될지, 휴지조각이 될지 정해지게 된다. 행사 가능 시점인 2020년 1월 2일만 하더라도 메리츠금융 주가는 1만1450원으로 5년 전과 큰 차이 없었다.
이후 김 부회장은 꾸준히 그룹 체질을 바꾸고, 화재와 증권을 합친 '원 메리츠'를 출범시키며 주주가치를 끌어올렸다.
실제 2014년 메리츠금융지주의 연간 당기순이익은 2376억 원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2조3334억 원으로 약 10배나 늘었다. 같은 기간 시총은 7791억 원에서 19조8349억 원으로 25배 증가했다. 20일 기준 시총은 22조9246억 원으로, 코스피 16위다. 삼성물산(028260)(21조941억 원)이나 카카오(035720)(18조9247억 원)보다도 가치가 더 높다. 금융사 중에서는 KB금융지주(105560)(32조3874억 원)와 신한금융지주(055550)(23조9388억 원)에 이어 3위다.

메리츠금융의 스톡옵션 도입은 조정호 회장의 결단이 작용했다. 우수 인력들의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보상 계획(Long-term Retention Plan)이 기업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임원들은 미래의 주식보다 당장의 돈으로 보상받길 선호했지만 조 회장은 미국과 같은 스톡옵션 제도가 필요하다고 봤다.
2015년 당시 김용범 부회장도 "2년 전 조 회장이 먼저 거론했지만 정작 전문경영인들이 주저했다"며 "지난해 조 회장이 강력히 다시 얘기해 준비하게 됐다"고 스톡옵션 도입 배경을 소개했다.
특히 기존 스톡옵션이 좋은 실적을 내고 주가 상승에 따라 보상받는 방식이었다면 메리츠금융은 우수 경영진을 파트너로 만들어 장기 근무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 부회장의 스톡옵션이 5년 지나야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실제 메리츠금융이 10년 동안 급성장하면서 조 회장의 판단이 맞아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우수 인재에게는 돈을 깎지 않는다는 메리츠 철학이 잘 반영된 사례"라고 평가했다.
김 부회장이 행사한 스톡옵션은 실제 주식이 교부되지 않는 차액보상(현금) 방법이다. 행사가와 행사일 종가의 차익을 보상하는 형태다. 신주를 주거나, 자기주식을 교부할 경우 추후 대량 매물이 나올 수 있어 주가 흐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스톡옵션 행사 이후인 12월 16∼18일 자사주 5만주를 주당 평균 9만8953원에 샀다. 약 50억원 규모다. 보유 주식이 기존 35만주(0.17%)에서 40만주(0.21%)로 늘었다. 메리츠금융지주 주가는 이날 12만200원에 마감했다. 김용범 부회장이 스톡옵션을 행사한 시점에 비해서 30% 가량 뛰었고 5만주를 추가 매수한 시점에 비해서도 20% 오른 가격이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