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통일'이란 주제가 나오면 우린 흔히 당위성, 혹은 필요성을 논한다. '통일을 원하나' 등의 단편적 의견을 묻는 경우가 대다수다. 만약 통일이 선택이 아닌 역사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라고 본다면, 이제 질문은 '통일을 어떻게 잘 준비하느냐'로 바뀌어야 한다.
지난 21일 법무법인 광장 사무실에서 만난 임형섭 변호사가 인터뷰 내내 통일 법제 전문가 양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단 40년 만에 통일을 이룬 독일이 가장 먼저 한 일도 법제도의 정비였다. 독일은 이후에도 30년 이상 법을 손보며 통합의 완성도를 높였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 법과 제도의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막연하고 복합한 쟁점을 구체화 할수록 모호하게 느껴지던 통일이 비로소 우리의 피부에 와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 변호사는 "북한 당국 또는 주민들의 강력한 통일 요구가 있거나 북한에서 힘의 공백이 발생할 경우 우리가 통일에 대한 강력한 의지나 준비된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는 기자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답을 이어갔다. "국제질서는 힘의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인근 국가가 그 땅(북한)에 대한 소유권과 당위성을 주장하면 과연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이를 용인하며 통일을 주저할 것인지 우리 공동체가 스스로 자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남북 간 직면한 문제에 대해 정부의 자문위원으로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임 변호사와 같은 통일법제 전문가들의 일 중 하나다. 현 남북관계에서는 다양한 법률적 쟁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남측에 피해를 줄 경우 어떻게 보상을 받을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이 반영된 해묵은 쟁점 사안이다.
지난 2020년 6월 북한이 우리 정부의 돈이 들어간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자 정부는 지난 2023년 6월 14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피고로 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북한은 지난 2022년 9월부터 개성공단을 무단 가동했는데, 이는 '남북 사이의 투자 보장에 관한 합의서'와 북한의 '개성공업지구법' 등을 위반한 것으로 법적 대응이 가능한 영역이다.
다만 남북관계의 현실에선 법의 잣대만 들이댈 수 없는 다양한 쟁점이 존재한다. 임 변호사는 국제법 및 국제조약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와 국내 법정에서 소를 제기할 경우, 두 가지 관점에서 법률적 쟁점을 설명했다.
규범적으로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체계가 한반도 전역에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나 실질적으로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에 법률의 실효적인 작용은 제한된다는 특수성이 있다. 또 북한은 유엔 회원국 중 하나의 국가로 인정되나 대한민국은 헌법 및 법률 체계에서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빈 협약 등 국제기구나 국제조약을 활용해 북한 당국의 행위에 국가책임을 추궁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 책임을 강제할 수 있는 분쟁 해결 절차와 수단은 마땅치 않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결론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사법 절차를 통해 북한 당국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이 있다. 다만 이 경우 북한에 대한 집행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강제집행이 가능한 피고의 '집행 재산'이 확인돼야 채권을 실효적으로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변호사는 여기에선 북한 당국이 제3국에 보유하고 있는 자산도 '집행 재산'으로 고려한 미국의 오토 웜비어 억류 및 사망 사건 판결 선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웜비어 사건의 원고는 미국 은행 3곳에 북한 관련 자금 2379만 달러가 예치된 사실을 파악했고 미 재무부가 보유한 북한 자산 3169만 달러의 정보도 확인하는 등 북한의 '범죄 자금'을 집행하는 데 공을 들였다.

'통일법제' 연구는 남북한 법제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지만 국제사회 흐름에 대한 통찰력도 중요하다. 한반도 통일이 단순히 한국과 북한을 합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남북한은 유엔 회원국이기 때문에 제3국 입장에서는 '국가 통합'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있다. 북한법과 국내법, 국제법 등 안팎으로 균형 있는 지식과 관점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도 굉장히 특수한 지역에 있어 남북한 통일을 주변 국가들이 '딴지'를 거는 상황을 충분히 상정할 수 있습니다.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채무를 통일한국이 해결해 준다는 보장이 있어야만 주변 국가로부터 통일에 대한 지지와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엔 '국가 승계' 이슈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데 국제법적으로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질서 중 하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다. 하지만 다자 제재의 실제 이행률은 50%도 미치지 못해 결국 실효성을 갖는 것은 '세컨더리 보이콧' 등 실효적인 수단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독자적 대북제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미관계와 함께 변화하는 미국의 대북제재 흐름을 파악하며 여기에 우리의 대응 방안을 구체화하는 것도 통일법제 전문가의 역할이라고 한다.
"한반도 문제는 국내 문제이자 국제 문제이기 때문에, 국제사회 환경 변화에 따라 남북관계법도 수시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발생할 수 있는 사회 현상을 가장 먼저 다루고 법률적으로 대비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다른 학문과 융합해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를 위해 통일 법제 전문가는 종합적 사고로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의 흐름까지 다 파악해야 합니다."
수시로 바뀌는 남북관계와 국제 정세를 연구에 반영해야 하기에 통일 법제를 '살아있는 학문'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이는 동시에 이 분야의 전문가 양성이 어려운 원인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변호사로서 현실적으로 수익 창출이 어렵다. 게다가 세대가 거듭될 수록 북한과의 연결고리도 흐려지면서 관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냉랭한 남북관계가 이어진다면 더욱더 '통일'에 대한 준비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13일 통일부는 장관 자문기구인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제3기를 구성하며 임 변호사를 위원으로 위촉했다. 선발된 40명의 전문가 중 유일한 법조인이기도 하다.
임 변호사의 정책 제안으로 통일부는 지난해부터 대한변호사협회와 함께 공동학술대회를 열었다. 그는 올해도 학술대회를 통해 통일법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향후 통일이 이뤄졌을 때 법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연구 뿐만 아니라 전문가 양성의 중요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다.
임 변호사는 2005년 통일정책연구회를 만들어 15년간 활동을 이어가다 2022년부터는 더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VK리더십포럼'을 이끌어왔다. 같은 해인 2022년에는 통일법제 발전에 기여한 것을 인정받아 통일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임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시절 통일에 뜻을 가진 이들과 함께 연구하며 통일법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왔다. 2018년부터는 통일부 통일법제추진위원회 위원으로, 2021년부터는 법제처 남북법제연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을 확장하고 있다.
"통일은 역사 발전의 흐름에서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만년을 함께 살았던 우리 민족에게는 통일에 대한 강한 내부의 구심력이 있습니다. 통일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회복탄력성'이라는 DNA가 있기 때문에 다시 이를 딛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 겁니다."
20대 초반에 통일에 관심을 가지게 돼 29년간 한 길만 바라보고 걸어 온 임 변호사의 가장 큰 고민은 후배 양성이다. 대한민국에서 통일법제 전문가는 '통일법제 전문가 2세대'인 임 변호사를 포함하여 다섯 명 내외에 그칠 정도로 극소수에 속한다.
이에 임 변호사는 후배 양성을 위해 지난해부터는 직접 발로 뛰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로스쿨에서 '통일법제의 이해' 강의와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통일법률아카데미 원장으로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등 같은 길을 걸어갈 후배들을 양성에 매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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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55마일은 남북 사이에 놓인 군사분계선의 길이입니다. 이 경계의 실체는 선명하지만, 경계에 가려진 사실은 투명하지 않습니다. 분단의 현실을 직시하되, 경계 너머 북한을 제대로 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