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뉴스1) 안영준 기자 = 중요한 순간 화려하게 비상했다. 챔프전 DNA를 앞세워 플레이오프에서 역스윕을 일군 남자 프로배구 대한항공의 이야기다.
대한항공은 30일 의정부 경민대 기념관에서 열린 KB손해보험과의 도드람 2024-25 V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KB손해보험을 세트스코어 3-0(25-20 25-20 28-26)으로 이겼다.
1차전을 내줬던 대한항공은 한 경기만 더 내주면 그대로 시즌을 마치는 위기 속에서도 2·3차전을 내리 잡으면서 역전,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8시즌 챔프전에 진출해 5시즌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이번 시즌 대한항공이 지난 4년처럼 완벽했던 건 아니었다. 대한항공은 최근 4시즌 연속 정규리그 1위와 챔프전 우승을 모두 일구는 통합 4연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정규리그에서 다소 흔들리며 3위를 기록, 챔프전 직행이 아닌 플레이오프부터 시작했다. 심지어 3차전을 홈이 아닌 원정에서 해야 하는 핸디캡까지 안았다.

그래서 올해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는데, 대한항공은 확실히 저력이 있었다.
그 저력은 '경험'에서 기인했다. 지난 4년 동안 '밥 먹듯' 챔프전에 오른 경험은 무시 못 할 큰 자산이었다.
3차전은 지는 팀이 그대로 패하기 때문에 부담이 있는 경기였는데, 대한항공의 정지석, 정한용, 조재영 등 경험 많은 주축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중압감이 더 커질수록 더 좋은 경기력으로 고비 때마다 두둑한 배짱과 자신감으로 승부를 걸었다. 정지석과 정한용이 번갈아 어려운 공을 득점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고 3세트 승부처에선 김규민이 교체로 들어와 연속 득점하는 등 모든 선수가 제 몫을 다했다.
KB손해보험 선수들이 부담감을 느껴 힘이 들어가면서, 상대적으로 대한항공의 차분한 경기 운영은 더 빛을 발했다.
KB손해보험은 정규리그 내내 펄펄 날았던 비예나가 이날 10점에 그치는 등 팀 전체가 흔들렸다.

흐름을 바꾸려면 서브에서 힘을 내줬어야 했는데, 러셀은 물론 박상하와 비예나까지 주축들의 서브가 연달아 네트에 걸리며 추격의 발판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2세트를 네트 터치로 내주는 등 범실만 20개나 범하면서 고개를 떨궈야 했다.
반면 대한항공은 여유가 있었다. 한 번 흐름을 가져오면 일부러 큰 제스처로 세리머니 하며 분위기도 띄웠다. 선수들 대부분이 밝은 표정으로 '봄 배구'를 즐겼다.
유광우의 존재감도 돋보였다. 유광우는 이번 시즌 정규리그에선 한선수에 밀려 많은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2차전 3-0 승리로 반등의 발판을 마련한 데 이어 이날도 승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3세트 막판 KB손해보험 블로커 3명을 따돌리는 감각적 선택은 이날 경기의 백미였다.
보통 큰 경기에서는 '에이스'인 외인 선수에게 몰아주는 경기 운영을 하기 마련인데, 유광우는 다양한 선수를 고르게 운영하며 KB손해보험을 흔들었다. 유광우의 고른 공 분배 덕분에 선수들이 다 함께 자신감이 올라오는 선순환으로도 이어졌다.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은 정규리그를 3위로 내준 데다 1차전까지 내줬음에도 이날 경기 전 "우리의 날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챔프전 DNA를 마음껏 발휘한 이날은 말 그대로 대한항공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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