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뉴스1) 안영준 기자 = 초등학교부터 함께 훈련했던 1996년생 동갑내기 친구가 메이저 종합대회에서 서로 다른 나라의 국기를 달고 만났다. 한국과 중국의 묘한 관계와 맞물려 둘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을 숨기지는 않았다.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남자 쇼트트랙에서 가장 흥미를 끈 관전 포인트는 박지원(서울시청)과 린샤오쥔(임효준)의 맞대결이었다.
린샤오쥔은 2018 평창 올림픽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금메달까지 땄던 한국 쇼트트랙 간판이었다.
하지만 2019년 동성 동료를 강제추행 혐의로 선수 자격 1년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고 이후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중국으로 귀화했다. 혐의는 최종 무죄 판결이 났지만 귀화를 돌이킬 순 없었다.
귀화선수는 기존 국적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한 뒤 3년이 지나야 한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올림픽 헌장에 따라 2022 베이징 올림픽에 나설 수 없었던 린샤오쥔은 이번 대회를 통해 중국 대표로 메이저 종합대회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쇼트트랙 강국 한국에서 중국행을 택한 린샤오쥔은 중국의 영웅이었고, 대회 내내 수많은 팬이 따라다녔다. 한국에서도 임효준이 아닌 린샤오쥔이 전 동료들과 경쟁하는 모습은 관심이었다.

그래서 대회 내내 두 선수의 경쟁에서 누가 승리할지, 두 선수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모든 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한국과 중국의 에이스답게 둘은 이번 대회에서 승부처마다 맞붙었다. 혼성 계주 2000m 결선에선 마지막 코너에서 린샤오쥔이 미끄러져 박지원이 이끈 한국이 금메달을 땄고, 남자 500m 결선에선 린샤오쥔이 박지원을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무래도 과거 같은 대표팀에서 뛸 때처럼 편한 사이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서로를 향한 존중을 잊지는 않았다.
박지원은 남자 500m에서 린샤오쥔이 금메달을 따고 감정이 요동쳐 눈물을 흘리자, 뒤에서 등을 두들기며 격려했다. 이후 시상대에서도 둘은 도란도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박지원이 린샤오쥔에게 악수를 청했다.
박지원은 인터뷰 자리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땅히 축하를 해줘야 한다. 서로 고생한 부분을 잘 알고 있는 사이"라며 신경을 썼다.

대회 내내 한국은 물론 중국 취재진의 요청에도 입을 열지 않았던 린샤오쥔은 모든 대회 일정을 다 마친 뒤 짧은 인터뷰에 응했다.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인터뷰에 임했던 그는 박지원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슬쩍 미소까지 지었다.
린샤오쥔은 "(박)지원이를 보고 동기부여를 얻는다. 이제 나이가 들어 1500m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동갑인 지원이가 잘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장 안에서는 경쟁자지만, 밖에서는 친구"라며 박지원을 향한 마음을 전했다.
이제 둘의 시선은 1년 뒤 열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으로 향한다. 올림픽에서도 강력한 메달 후보인 둘은 다시 다른 국기를 달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박지원은 "올림픽에서 맞붙을 때 누가 이길지 장담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다. 린샤오쥔도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린샤오쥔 역시 "올림픽은 부담이 큰 대회기도 하지만, 다른 선수들이 그렇듯 나 역시 최선을 다해 준비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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