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고령 이후 계엄사령관 지시에 따라 국회 통제를 강화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월담자를 통제하지 않고비상계엄을 조기 해제할 수 있도록 사실상 기여했다.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지난달 20일 내란 혐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나온 조지호 경찰청장. 그의 변호인은 검찰이 낭독한 공소사실에 이런 의견을 밝혔습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등도 혐의를 부인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경찰이 국회 문을 막아선 상황에서도 담을 넘어 들어간 우원식 국회의장이 '월담자를 통제하지 않아 비상계엄 조기 해제에 사실상 기여했다'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다만 조 청장 측이 법정에서 '계엄 해제 기여'를 언급하기까지 부하 간부와 현장 경찰들이 '12·3 계엄의 밤'에 겪은, 혼란했던 속사정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법정 1열에서는 지난달 31일과 이번 달 7일 내란 혐의 재판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 간부들의 증언을 토대로 '계엄의 밤' 당시 '국회 봉쇄' 상황을 재구성했습니다.
'말도 안 된다,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주진우 전 서울청 경비부장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 25분, 주진우 전 서울경찰청 경비부장(현 울산경찰청 공공안전부장)은 김 전 서울청장의 전화에 텔레비전을 틀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대국민 담화를 지켜봤습니다.
'미쳤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감상에 젖을 틈은 없었습니다. 오후 10시 46분쯤 국회로 들어오는 인원을 전부 차단하라는 김 전 서울청장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상계엄 소식을 들은 국회의원과 시민들은 국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국회 문이 막히자 급기야 우 의장을 포함한 몇몇 의원은 담을 넘었습니다.
국회의원 출입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큰일 날 것 같습니다. 결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주진우 전 서울청 경비부장
국회 통제가 시작된 지 20여 분 뒤인 오후 11시 7분쯤, 돌연 국회의원과 국회 직원들을 들여보내라는 무전이 다시 울렸습니다.
오부명 전 서울청 공공안전차장(현 경북경찰청장)은 "사무실에 있던 부장들이나 제가 관련 헌법 조항과 계엄법을 봤고 국회의원에게 계엄 해제 요구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의원까지 출입을 차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김 전 서울청장에게 건의를 드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포고령 발령 뒤인 오후 11시 37분. 상황은 다시 반전됩니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포고령 1호를 근거로 조 청장이 국회 전면 통제를 다시 지시한 겁니다.
현장은 다시 혼란에 빠졌습니다. 경찰 간부 사이에선 잠깐의 의견 대립도 있었습니다.
오 전 차장은 1차 봉쇄에 이어 또 한 번 문제를 제기하며 임정주 경찰청 경비국장에게 재검토를 요청했습니다. 반대로 최현석 전 서울청 생활안전차장(중앙경찰학교장)은 '긴급 시에는 포고령의 법률적 효과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고 합니다. 최 전 차장은 변호사 자격이 있는 경찰청 법무과장 출신이기도 합니다.
이내 결론을 내린 김 전 서울청장은 무전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주 전 부장은 "김 전 서울청장이 손사래를 치면서 '이거 조 청장님 지시야'라며 포고령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조 청장에게 재검토 건의를 보고한 임 국장 역시 "포고령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가 체포당할 수 있다"는 말만을 돌려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30분간 허용된 출입과 월담 등 갖은 방법으로 의결 정족수를 채운 국회는 오전 1시 3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과연 조 청장의 '기여'라고 볼 수 있을까요. 조 청장 측은 이 점을 강조하려는 듯 증인신문 중 '다수 의원이 들어갈 수 있지 않았느냐', '배치된 경력이 부족해 완전 통제와는 큰 차이가 있지 않느냐' 등 질문을 경찰 간부들에게 던졌습니다.
이에 대한 법원 판단을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지난 4일 윤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면서 군·경을 통한 국회 통제를 이처럼 판단했습니다. "국회 권한 행사를 방해했으므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을 부여한 헌법을 위반했다."
saem@news1.kr
편집자주 ...법원에 상주하며 재판에 들어가는 통신기자가 전합니다. 방청석 맨 앞줄에서 마주한 생생한 법정 현장과 미처 기사에 담지 못한 그 뒷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