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민주 기자 = 곳곳에 빈자리가 여전한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장 인선 작업이 대통령 파면에 따라 최소 수개월 이상 또 다시 늦춰지게 됐다.
길게는 1년 넘게 비어있던 수장 자리가 탄핵 인용 직전까지 급급하게 채워지는가 싶었으나 다시금 멈춰섰다. 관가에서는 정권 교체가 유력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새로 임명하기도, 누군가가 그 자리를 수락하기도 껄끄러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9일 관가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따라 공공기관 인사가 사실상 중단됐고 기관장 인사도 쉽지 않다는 진단이 나온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공기관(공기업)장은 임원추천위원회가 복수로 추천해 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친 사람 중에서 주무기관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임명 전 고위공무원 선임 때와 유사하게 이들에 대해서도 적격성 평가가 개별적으로 이뤄진다.
단 기관 규모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 이하인 공기업의 장은 동일한 절차를 거쳐 주무기관의 장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여기서 기준은 총수입액이 1000억 원 미만이거나 직원 정원이 500명 미만인 공기업을 말한다.
중기부 산하 공공기관은 총 11개인데 이중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기술보증기금은 준공공기관에 해당하며 주식회사인 공영홈쇼핑과 한국중소벤처기업유통원, 한국벤처투자를 제외한 5개는 기타공공기관에 해당한다.
기타공공기관은 주무기관의 장(중기부 장관)이 임명할 수 있으며 주식회사인 곳은 주주총회를 통해 대표이사를 선임하게 된다.
현재 중기부 산하 공공기관 중 수장 자리가 빈 곳은 한국벤처투자와 공영홈쇼핑이다. 기술보증기금,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도 임기 만료로 새 수장을 찾아야 한다.
9조 원 규모의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 대표 자리는 2023년 11월 유웅환 전 대표가 자진 사임한 이래로 18개월째 공석이다. 현재는 신상한 부대표가 직무대행을 하고 있으나 그의 임기도 올 9월이면 끝난다.
한벤투는 지난달 중순께 대표이사 공개모집 공고를 게재하고 추천위원회, 서류 심사, 면접 등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언제쯤 인선이 마무리될지는 미지수다. 한벤투는 지난해 8월에도 대표이사 공모 절차를 진행했으나 새 수장을 맞이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기관장 임기가 끝난 기술보증기금 김종호 이사장은 임기가 종료됐지만 후임을 구하지 못해 유임하고 있다. 당초 기보는 지난해 말 신임 이사장 공모를 위한 서류접수와 면접 등을 진행했으나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공영홈쇼핑은 지난해 9월 조성호 전 대표가 임기 만료로 퇴임한 후 새 수장을 찾지 못했다. 현재는 김영주 경영지원본부장과 이종원 사업본부장이 대표이사 공동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공영홈쇼핑 역시 주식회사기 때문에 장관 재가 없이 주주총회를 거치면 새 수장을 맞이할 수 있지만 인선이 답보 상태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김영환 사무총장 역시 지난달 임기가 끝났지만 후임을 구하지 못한 상황이다.
곳곳에 난 빈자리가 채워질 기미가 없는 가운데 관가에서는 대선 전에 수장 선임을 완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내다본다.
주식회사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장에 대한 장관 임명이 필요 없다고는 하지만 중기부 예산과 지휘·감독을 받는 산하기관인 만큼 정국과 무관하게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대표를 선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앙부처 관계자는 "지금 같은 시국에 섣불리 누구를 세웠다가는 (알박기라는 식의) 괜한 오해를 살 수 있고, 대상자 입장에서도 (대선 후에 전 정권 인사라며) 조기에 교체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서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주식회사의 경우 임명권이 주주총회에 있다고는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임명 과정에서 주무 부처와 논의 없이 (선임이) 이뤄지긴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에도 공공기관장 인사는 중단됐다. 관가에서는 지금 물망에 오른 인사라 할지라도 대통령 선거가 끝난 이후에 재공모 절차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다른 관계자 역시 "지금 얼마나 진행이 됐고 그런 부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선임이 되고 임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소리"라며 "막말로 정권이 바뀌면 장관도 바뀔 텐데 하물며 아직 선임도 안 된 산하기관장은 안 바뀌겠느냐"고 전했다.
정책 수요자들은 장기화하는 중기부 산하기관장 공백에 정책 추진 차질을 우려한다. 언제 후임자가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선 신규 사업을 수립하고 진행하기에는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중기부가 정책의 큰 틀을 만드는 곳이라면 산하 공공기관들은 이에 따라 현장에서 직접 움직이고 정책을 실시하는 곳들"이라며 "이런 곳의 컨트롤 타워가 없으면 어떻게 사업 추진이 잘 되겠냐. 빨리 좀 정리가 돼야 한다"고 했다.
한편 오영주 중기부 장관은 탄핵 인용 전인 지난달 산하 공공기관장 인선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오 장관은 3월 2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책수행을 담당하는 산하기관장을 가능한 적임자를 찾아 절차에 따라서 늦추지 않고 (임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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