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사라진 韓 경제…20년간 10대 수출품 중 8개가 같았다

[동력 잃은 韓경제]②반도체·車에 안주한 韓…트럼프 엄포에 휘청
미국은 시총 상위 10곳 중 8곳이 신생 '빅테크'…한국은 제조·금융업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후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2.25/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후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2.25/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세종=뉴스1) 김승준 기자

"한국 경제는 그동안 구조조정 없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산업을 키우지 않고 기존 산업에만 의존해 왔다. 더 높은 성장을 하려면 어렵더라도 구조 조정을 해야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 경제의 현 상황에 대해 내린 진단이다. 이 총재는 올해 한국 경제에 대해 1.8%의 낮은 성장 전망을 내놓으면서 '1%대 성장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실력'이라고 쓴소리했다.

이 총재의 지적처럼 그동안 한국 경제는 신(新)산업 발굴에 소홀했고,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 산업 돈벌이에만 안주해 산업 생태계가 경직되고 말았다. 지난 20여년간 우리나라 상위 10개 수출 품목 중 8개는 변함이 없었고, 특히 반도체·자동차 등 상위 3개 품목이 전체 수출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까지 확대돼 쏠림이 심화했다.

그러나 한국 경제를 지탱하던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설상가상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자동차 등에 대한 대규모 관세 등 규제를 예고하면서 한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반도체·자동차에 편중된 韓 수출…20년 전과 판박이

반도체는 한국 전체 수출의 16%가량을 차지하는 수출 1위 품목이다. 반도체 경기에 따라 한국 수출과 경기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 경제 성장이 크게 꺾인 것도 반도체 수출 부진이 가장 큰 요인이다.

이런 구조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 한국사무소가 '우리나라 상위 10위 수출 품목의 20년간 변화'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 2005년과 2024년,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 1·2위는 반도체, 자동차 순으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했다.

컴퓨터가 제외되고, 가전제품이 새로 진입한 것 외에는 품목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지난 10년간 수출 상위 3개 품목을 봐도 대부분 반도체, 석유제품, 자동차가 서로 순위만 바뀌었다. 3대 품목의 수출 점유율은 2014년 28%에서 2024년 38%로 늘어 한국 경제의 3대 품목 의존도는 더욱 심화했다.

이는 수출 품목의 집중도에서도 드러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2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수출 품목 집중도는 779.3점으로 세계 10대 수출국 중 가장 높았다. 10대 수출국 평균은 548.1점이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특정 품목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수출구조가 반영된 결과"라며 "특정 품목이나 국가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대외 환경 변화에 따른 충격을 더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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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특정 품목에 편중된 수출 구조는 한국 전체 수출과 경기를 좌우하는 리스크다. 지난 2022년 2월 이후 한국은 16개월간 무역수지 적자에 시달렸다. 당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초기 에너지 수입액 급등에 따른 영향도 컸지만, 그해 말부터 이어진 반도체 혹한기가 맞물리면서 우리 수출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또다시 최근 들어 반도체 산업이 주춤함에 따라 한국 경제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반도체 수출이 16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하면서 전체 수출 시장이 위축됐다.

2월 반도체 수출은 96억 달러로 전년 대비 3% 줄었다. 고부가 메모리 반도체의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범용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수출액이 감소했다. DDR4(8Gb)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5%, NAND(128Gb) 가격은 53.1% 떨어졌다.

특정국에 편중된 수출 구조도 문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한국 수출액은 6836억 달러로 이 중 38.14%가 미·중 수출이다. 미국과 중국 수출이 전체 수출에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 30.7%, 2000년 32.5%, 2010년 35.8%로 점차 확대돼 2020년엔 40%를 넘어서기도 했다.

미국, 중국이 전 세계 경제권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고려해도 한국은 다른 주요 국가 대비 미·중 의존도가 심한 편이다. 세계은행이 추산한 한국의 2022년 '허핀달-허쉬만(HH) 시장 집중 지수'는 0.1이다. 이는 전 세계 수출 상위 10개국 기준으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이 높다는 의미다.

본문 이미지 - 2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2025.3.2/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2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2025.3.2/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韓, 제조·금융업 위주 기업 20년째 군림…미국, 상위 10곳 중 8곳 '빅테크'

한국 경제의 경직성은 미국과 비교하면 더 도드라진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24년 상위 500개 기업 명단을 보면 한국 기업은 9개로, 미국(176개), 중국(57개), 일본(45개), 영국(25개), 프랑스(24개), 캐나다(20개), 독일(18개) 등 상위 국가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500위 안에 들어간 9개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기아, KB금융그룹, 신한금융그룹, 하나금융그룹, 포스코, 현대모비스, 삼성물산 등으로 전통 제조·금융 기업에 치중돼 있다.

반면 미국은 전통적인 기업 외에도 2000년 이후 설립된 메타, 테슬라 등 신생 빅테크 기업이 500위 이내에 이름을 올려 든든한 경제 버팀목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시가 총액 기준 상위 기업 명단에서도 이런 변화가 드러난다. 지난 4일 기준 미국 시총 상위 10개 기업 중 8곳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등 IT 신산업을 선도하는 ‘빅테크’기업이다. 유일한 제약사인 일라이 릴리도 혁신적인 비만치료제로 기술력을 주목받는 바이오 기업이다.

2014년 시총 10위 기업 중 애플, 알파벳(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버크셔 해서웨이를 제외한 기업은 10년 동안 하위권으로 내려갔고, 그사이 혁신 기업들이 상위권을 꿰차면서 산업군이 변화하는 역동성이 있었다.

반면 한국은 20년 넘게 삼성전자가 시총 1위를 이어왔고 지난 10년간 일부 순위 변동이 있었지만 전통 제조업과 금융업이 여전히 강세다. 시총 상위 10개 기업 중 전통 대기업과 무관한 젊은 기업은 네이버, 셀트리온뿐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한국의 다음 S커브: 2040년 새로운 경제 성장 모델' 보고서에서 "전통적으로 한국의 성공적인 경제 성장의 핵심이었지만 경쟁력이 점점 약화할 가능성이 높은 산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의미 있는 성장을 달성하려면 보다 혁신적인 비즈니스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 스타트업, 외국계 기업 등 다양한 기업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갖춘 전문가를 유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seungjun24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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