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뉴스1) 정은지 특파원 = 최근 베이징 한 업무지구에 있는 중국 식당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저장성 음식을 파는 이곳은 1인당 평균 소비금액이 200위안(약 4만 원)을 넘는 비교적 고급 식당이다. 여성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예약된 방으로 들어가자 먼저 도착한 현지 지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한 지인은 넌지시 종업원들이 북한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그를 따라 들어온 기자 역시 '현지인이 아닌가' 생각하던 차였다.
베이징엔 옥류관과 같은 북한 식당이 여럿 있지만, 2023년부터 남북관계 악화로 한국인의 북한 식당 출입이 금지된 터라 북한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중국인 일행과 20대로 보이는 종업원 사이에 "혹시 북한 사람인가" "그렇다", "중국어를 상당히 잘한다. 온 지 얼마나 됐느냐" "4년 됐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 식의 짧은 대화가 오갔다. 홀 서비스를 담당하는 종업원 모두 북한에서 왔다고 했다.
손님 중에 비(非)중국인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스몰 토크였을 것이다. 식사 도중 잠시 방을 나섰던 일행은 "혹시 한국인이냐" 질문을 받았다. 음식 서비스를 이어가던 중에야 '한국인이 있는가' 느꼈나 보다. 손님이 테이블에 앉자마자 국적을 밝히지 않은 일로, 종업원이 곤란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사실 유엔 회원국이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안보리 보고서는 북한 노동자 약 10만 명이 40여개국에서 식당 종업원이나 재봉, 건설, 의료 분야에서 일하며 연간 약 5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정한다.
베이징의 중국인 지인들은 베이징카오야 전문점이나 풍경이 좋은 대형 식당 같은 곳에서 북한 종업원들을 만난 적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북·중 관계를 고려하면 당국의 묵인이 있을 것이다. 근년 들어 북러 밀착과 북·중 이상 기류로 중국 당국이 북한 노동자들의 비자를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북한을 압박한다는 소식도 있다.
멀리 시선을 돌리면 목숨을 담보로 한 북한 주민들의 외화벌이도 있다. 러시아 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터에 보내진 북한군 병사는 1명당 월 2000달러를 받기로 했다고 한다. 약 1만 2000명이 파병됐고 3분의 1인 최대 4000명이 사망했다는 추정이 있다. 가슴 아픈 일이다.
가성비 좋은 북한 노동력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들이는 외화가 노동자들의 지갑에 온전히 들어갈 리 없다. 김정은 정권과 핵무기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되고, 이는 다시 북한의 고립을 강화해 북한 주민들의 해외 진출을 제한하게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으로 동북아 정세도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다시 한번 테이블이 마련될지 모를 한반도 비핵화 논의에서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 식당에서 그를 다시 만나 "저도 한국 사람입니다" 웃으며 인사하고 싶다.
ejju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