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밝음 기자 =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내놓은 판단은 명료했다.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가 민주적 절차와 방법을 벗어났다고 지적하면서 동시에 다수 의석을 점한 야당 역시 대화와 타협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결정문을 두고 헌재가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정작 이를 새겨들어야 할 정치권은 결정문을 읽지도 않은 듯한 모습이다.
당장 윤 전 대통령은 파면 후 낸 두 번의 입장문에서 헌재 결정에 대한 존중이나 승복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저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들의 '싸우는 모습'에 감사를 표했을 뿐이다. 사실상 헌재 결정에 불복하고 계속 싸워달라고 지지층을 부추긴 것이다.
헌재가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고 했지만, 여전히 윤 전 대통령은 탄핵을 반대한 지지자들만 국민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런 윤 전 대통령을 찾아가 '대선에서 승리해달라'는 당부를 받아들고 왔다. 의원들에게 박수로 재신임을 받은 뒤엔 "대선 승리가 사명"이라고 했다.
단순히 '이재명 대통령을 막겠다'는 구호가 먹히지 않는다는 건 지난 총선 때 이미 확인됐다. 헌재는 "야당의 전횡을 바로잡고 피청구인이 국정을 주도해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국민을 설득할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과 함께 여당도 2년간 국민 과반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대통령 탄핵을 초래한 이번엔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 건가.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이 더불어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의 법안 강행 처리와 탄핵소추안 반복 발의를 명확하게 지적하면서 "국회는 당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을 존중(했어야 한다)"고 했다.
헌재의 일침에도 민주당은 내란 특검법과 명태균 특검법을 재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미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정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또 발의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파면되면 권한대행이 조기 대선 선거일을 공고하도록 강제하는 법안도 내놨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일방적으로 국회의 권한을 행사하는 일이 거듭됐고, 이는 정부와 국회 사이에 상당한 마찰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는데, 지금도 변함없이 다수 의석을 앞세워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뒤 정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만 41건, 발의한 탄핵소추안만 30건에 이른다. 과유불급이다.
헌재 선고 전까지 탄핵을 반대하는 여론이 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보다 컸는지, 민주당 스스로도 왜 기각 가능성에 불안해야 했는지 돌아볼 문제다.
헌재는 "정부와 국회 사이의 대립은 일방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조율되고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했다. 정치권이 '정치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을 한 번쯤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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