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진흥법의 취지는 미술 생태계를 지원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화랑업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최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성훈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미술진흥법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미술진흥법 중에서도 특히 '화랑업 신고제' 도입은 미술계를 발전시키는 게 아닌, 화랑업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술품 '재판매보상청구권'(추급권)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법조인 출신으로 지난 2월부터 한국화랑협회 임기 2년의 회장을 맡게 된 이 회장은 선화랑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판사와 변호사로 활동하며 법을 다룬 경험을 살려 미술진흥법을 법적 관점에서 분석, 미술인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 회장은 미술진흥법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시행 시기를 최소한 3~5년 늦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을 만났다.
-미술 서비스업 신고제는 무엇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미술진흥법은 미술 생태계 전반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미술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됐다. 2023년 7월에 제정됐고, 2024년 7월 26일부터 순차적으로 시행 중이다. 미술 서비스업 신고제, 미술품 재판매보상청구권 도입, 미술 창작 및 유통 지원, 미술품 불법 복제 및 유통 방지, 공공미술은행 설립, 미술진흥 전담기관 지정 등을 골자로 한다.
미술 서비스업 신고제의 경우, 2026년 7월 26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며, 구체적인 신고 내용은 대통령령에서 정할 예정이다. 재판매보상청구권(추급권) 관련 조항도 2027년 7월 26일부터 시행되며, 보상금의 산정 요율 역시 추후 대통령령에 의해 별도로 규정될 예정이다. 그런데 시행령을 집행함에 있어 행정기관의 재량적 판단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미술 시장의 특성상 거래의 상당 부분이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신고제만으로는 모든 거래를 투명하게 관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즉 실효성이 떨어진다. 화랑 등 미술 서비스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규제가 오히려 미술 시장의 활력을 저해할 수 있다. 신고제 도입으로 인해 미술 서비스업자들의 행정적 부담이 증가하고, 이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른 국가의 미술 서비스업 신고제 시행 사례는 없나.
▶세계적으로 화랑업에 신고제나 허가제를 시행하는 국가가 없고, 미술시장에 맡기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만의 화랑업 신고제는 국내 미술 시장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한, 신고 사항의 범위, 신고 절차, 제재 기준 등 세부 규정이 아직 명확하게 확정되지 않아 미술품 거래와 유통 현장에서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화랑에 대한 신고제가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유는.
▶미술진흥법에도 잘 정의되어 있듯이, 화랑은 단지 미술품을 거래하고 유통하는 곳이 아니다.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 화랑의 가장 큰 역할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익적 기능을 행정기관이 단순히 서류상 요건으로 판단하는 건 무리다. 특히 미술진흥법의 시행령이 불확정적 개념으로 정리될 경우 행정처의 재량적 판단이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부실 화랑을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어떤 점에서 부실한 화랑이 양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화랑이 단순히 시설을 갖추고, 인원을 갖추고, 자본을 갖춘다고 해서 운영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화랑이 갖추어야 할 전시 기획력, 작가 발굴력, 작가와의 유대관계, 운영자의 예술적 안목 등을 어떻게 행정기관에서 평가할 수 있겠는가. 과거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 '케이갤러리 사건' 같은 폰지 사기를 보면 엉터리 화랑의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재판매보상청구원(추급권)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추급권은 미술품이 재판매될 때 원작자가 판매액의 일정 비율을 보상받을 수 있는 권리다. 프랑스에서 처음 도입됐으며,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밀레의 경우 '만종'이 최초 75달러 팔렸을 때 약 7달러를 보상받은 게 전부였다. 이후 그림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밀레에게 돌아간 몫은 없다. 이러한 모순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미술진흥법에 따르면, 500만 원 이상 미술품 재판매 시 적용되고, 원작자로부터 직접 취득 후 3년 내 재판매되거나 2000만 원 미만에 거래된 작품은 제외된다.
그런데 미술품 거래 내역을 신고할 경우 거래 정보 공개에 따른 개인 컬렉터들의 거래 기피, 화랑 및 경매사의 운영 부담 증가 등 미술 시장 위축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한마디로, 개인끼리 거래를 하지 누가 화랑을 통해 공개적으로 거래를 하겠냐는 것이다. 또한, 복잡한 사정에 따른 개인 간 거래나 상속에 이를 어떻게 다 적용하냐는 것이다. 이는 곧 화랑 활동의 위축과 경영 위기로 이어져 문을 닫는 화랑이 속출할 수 있다. 또한 재판매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신진작가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도가 미미하다.
-화랑협회는 미술진흥법에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미술진흥법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이 법의 취지가 미술계를 지원하려는 목적을 띄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아직 시행령이 공포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응 계획도 지금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다만, 법이 다소 치밀하지 못한 부분은 있다. 지금으로선 미술 서비스업 신고제를 비롯해 일부 내용에서 미술계의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측면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현재 화랑협회에서 주력하는 활동은 무엇인가.
▶미술진흥법에서 입법 취지를 저해할 가능성을 내포한 부분을 찾아내고, 이를 이해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미술계의 의견과 뜻을 모아 기본적으로 '신고제'가 화랑업에는 잘 맞지 않는 점이 있다는 의견을 문체부 등 유관부서 관계자에게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관계자들 역시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점을 경청하며 앞으로 시행령 내용을 만드는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밖에 화랑협회는 어떤 점을 개선하고자 하는가.▶현재 미술계의 작품 구매 구조는 80%에 달하는 개인 수요 중심이다. 이것이 기업 수요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업은 미술품 구매로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기업이 미술품을 많이 구매할수록 세제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세제혜택 상한선은 1000만 원인데, 이는 10년 전 기준이다. 이를 3000만 원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법인 외 개인 기업까지 공제 혜택 적용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에 실질적인 지원이 될 수 있고, 미술품을 기업이 많이 사야 미술계가 미술진흥법 적용에 순응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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