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기훈, 수원을 잊지 못하는 남자 [인터뷰]

레전드에서 '강등 감독' 오점…"내가 부족했던 탓"
"좋은 지도자로 되돌아올 것…수원의 승격 응원해"

수원의 레전드였으나  오점을 남기고 쓸쓸하게 빅버드를 떠난 염기훈. 그러나 그는 지금도 수원을 아끼고 사랑한다.
수원의 레전드였으나 오점을 남기고 쓸쓸하게 빅버드를 떠난 염기훈. 그러나 그는 지금도 수원을 아끼고 사랑한다.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염기훈(42)은 왼발로 K리그를 풍미한 선수다. 스스로의 표현처럼 "그렇게 빠르지도 않고 왼발만 좋았던 윙어"였지만, 그 왼발이 워낙 특별해 알고도 막기 어려웠다.

은퇴할 때까지 그는 445경기(프로축구 기준) 출전에 77골 110도움이라는 화려한 발자국을 남겼다. 110개의 어시스트는 역다 최다도움이며 전인미답의 '80(골)-80도움)'에 딱 3골이 부족한 기록을 남겼으니 적어도 K리그에서는 '레전드'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2006년 전북현대에서 데뷔해 그해 신인왕을 받았고 이후 울산현대(2007~2009)를 거쳐 2010년부터는 내내 수원삼성에서만 활약했다. 명문 클럽만 거쳤고 특히 수원에 대한 애정은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이다. 이쯤이면 충분히 '은퇴식'을 통해 박수 받고 제2의 인생을 축복받았어야할 선수다. 하지만 그는 쫓기듯 필드를 떠났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은 이랬다. 2022년까지 선수였던 그는 2023년 플레잉코치로 은퇴와 지도자의 길을 준비하다 그해 9월 갑자기 수원의 '임시 감독'이 됐다. 그리고 2024년, 2부로 떨어진 수원의 정식 감독으로 선임돼 팀과 함께 부활을 꿈꿨으나 5월 성적부진으로 사퇴했다.

선수 시절 '갓기훈'이라 불리며 수원 팬들의 큰 사랑을 받던 염기훈은 옆에서 듣는 사람도 힘든 욕설과 조롱, 심지어 가족을 향한 비방까지 들으면서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와 눈물로 이별했다. 아프게 헤어졌기에 한동안은 축구에 대한 미련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염기훈은 인도네시아대표팀 코치로, 예능 프로그램 슈팅스타 출연진으로, 심지어 K5리그 아마추어 클럽 양산FC의 선수로 코리아컵에 깜짝 출전하는 등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는 "난 정말 축구가 좋고 수원삼성을 사랑한다"고 했다.

3월의 마지막 날 뉴스1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수원 팬들에 대한 원망은 없다. 그저 미안한 마음만 있을 뿐"이라면서 "지금도 빅버드로 가서 수원의 승리를 응원하고 싶다. 수원이 꼭 승격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특별한 감정을 전했다.

본문 이미지 - 추락하는 팀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다는 염기훈. 그 선택이 염기훈의 축구인생을 바꿔 놓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추락하는 팀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다는 염기훈. 그 선택이 염기훈의 축구인생을 바꿔 놓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갈림길에서 내린 선택…"수원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2023년 9월이었다. 그때의 결정이 염기훈의 축구인생을 바꿔놓았다. 플레잉코치였던 그는, 팀 순위가 곤두박질치자 구단의 제안을 받아들여 감독대행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한때 반전의 기미도 있었으나 최종 결과는 강등. 가라앉는 배를 끌어올리는 멋진 히어로를 상상했겠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워낙 수원을 좋아하고 사랑하다보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돌아보면 무모한 결정이었다. 난 부족했고 그로 인해 많은 분들이 상처 받았다. 누군가는 (감독을 맡고 싶은)욕심이었다고 비난한다. 변명하고 싶진 않다. 그때 난 그저 팀을 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수원의 전설로 클럽 역사에 진하게 새겨졌을 염기훈은 그 선택과 함께 '강등 감독'이라는 오점을 남겼고, 2부리그에서 다시 해보자고 시작부터 이를 악물었으나 결국 초라하게 물러났다. '명문 클럽'의 추락 과정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고 많은 이들의 책임이 나눠져야 마땅하지만 일단 십자가는 염기훈 등에 얹어졌다. 정작 당사자는 원망도 미련도 없다고 했다.

"아내가 수없이 눈물 흘렸을 정도로 아픈 시간이었지만 그때 선택에 후회는 없다. 몇 개월 남짓 짧은 감독 생활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 경기들을 지금 계속 돌려보면서 복기하고 있다. 아직 젊고, 언젠가 다시 지도자로 돌아가고 싶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고 있다."

염기훈은 "지금 당장이라도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만큼 필드가 목마르다"고 했다. 그렇다고 '수원 감독으로의 복귀'를 말하진 않았다. 그는 "훗날 어떤 팀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 '염기훈이 처음보다는 좋은 지도자가 됐구나' 라는 수원 팬들의 평가를 듣고 싶다. '정말 노력했구나'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본문 이미지 - 누구보다 많이 사랑 받았고 동시에 거친 비난도 들었던 염기훈은, 부디 지나친 비난은 삼가달라고 당부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누구보다 많이 사랑 받았고 동시에 거친 비난도 들었던 염기훈은, 부디 지나친 비난은 삼가달라고 당부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그래도 지나친 비난은 자제해 주길…올해의 꿈은 '수원 우승'

수원삼성 팬들은 열정적이다. 뜨거움으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2부리그 전체 관중이 크게 늘어난 것이 수원 강등 덕분이라는 우스갯소리는, 현재 위치에도 변함없는 그들의 충성심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홈이든 원정이든 수원 관중석은 '청백적'으로 넘실거린다.

그런 지지자들 때문에 선수들은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도 뛸 수 있다. 그래서 일부의 좋지 않은 이들의 매너가 더 안타깝다. 출처가 어디일까 싶은 욕설쯤은 거침없이 내뿜어야 진짜 축구팬이라 생각하는 소수 때문에 선수들도 상처받고 같이 경기를 보는 팬들도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K리그를 사랑하는 염기훈도 이 대목에서 열변을 토했다.

염기훈은 "먼저 말씀드리지만, 정말 팬들 덕분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감독과 선수 모두 팬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한다. 함께 뛰어주는 그분들을 생각하면 결코 게으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안타까움을 담은 바람을 전했다.

그는 "경기에서 지면 감독도 선수도 아프다. 누가 지고 싶겠는가. 자신들의 플레이가 좋지 않으면 며칠 끙끙 앓는다"면서 "팬들의 속상함은 이해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해야할까 싶은 욕설은 자제했으면 한다. 대표팀 생활을 포함해 누구보다 많은 비판을 받아봐서 안다. 가족까지 들먹이고, 없는 루머까지 만들어내면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현장을 종종 찾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발언이다. 가족끼리 즐거운 마음으로 축구 보러왔는데 아이들 눈귀 막다가 한숨 쉬고 돌아가서 다시 축구장을 찾지 않는 이들도 꽤 많다. 염기훈은 "어떤 것이 '우리 팀'의 발전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줬으면 싶다"고 덧붙였다.

본문 이미지 - 수원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염기훈의 올해 꿈은, 수원의 승격이다.
수원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염기훈의 올해 꿈은, 수원의 승격이다.

한 나라의 축구 수준은, 모든 구성원 수준의 합이라고 한다. 지도력 없는 감독들만 있는데 뛰어난 선수가 나올 수 없고 판정이 2류인데 매끄러운 경기 운영을 기대할 수 없다. 응원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수준 높은 팬들이 경기장을 채워주면 부끄러운 축구를 하는 선수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이제 40대 초반. 앞길 창창한 지도자 염기훈은 "선수 생활을 오래했을 뿐이지 지도자는 이제 2년"이라면서 "앞으로 어디서도 배우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했다. 그때 아픔이 헛되지 않도록, 반드시 좋은 지도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되찾은 염기훈의 올해 목표는 염기훈스럽다.

그는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수원을 더 많이 응원한다"고 했다. 이어 "반드시 1부로 승격해 내 마음의 짐을 아주 조금이라도 내려놓고 싶다. 그때가 되면 팬들과 함께 관중석에서 수원을 응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승하길 간절하게 기원한다"고 했다. 이 남자는 수원을 잊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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