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엔비디아가 주도하던 인공지능(AI) 칩 시장에 균열이 가고 있다. 빅테크들이 자사 AI 모델에 최적화한 맞춤형 AI칩(ASIC) 개발에 나서면서 엔비디아 칩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질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12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AI 칩 스타트업 포지트론(Positron)은 11일(현지시간) 2350만 달러(341억 4550만 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투자자 명단에는 벨러에쿼티파트너스와 플룸벤처스 등이 이름을 올렸다.
포지트론은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를 대체하기 위한 자체 칩 생산을 준비 중이다. 자사 칩이 엔비디아의 가속기인 H100과 성능은 동일하면서도 전력 사용량은 3분의 1이라고 주장한다.
포지트론의 AI 칩은 AI 모델 훈련보다는 추론에 특화한 칩이다. 최근 AI 추론 영역에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ASIC이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빅테크들도 자체 칩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전히 AI 모델 학습에는 엔비디아 등의 고성능 AI 가속기가 필요하지만 각 기업의 AI 모델이 경량화하면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칩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특히 중국 AI 모델 '딥시크' 여파로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증설에 수십~수백조 원을 투자하는 빅테크들 입장에서 전력 소모가 많고 값비싼 엔비디아 가속기에만 의존하는 건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딥시크의 영향으로 시장 트렌드가 AI 학습에서 추론으로 전환하면서 AI 추론용 서버 점유율이 50%에 가까워질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메타는 AI 분야에 올해 최대 650억 달러(약 94조 4000억 원)를, 마이크로소프트(MS)는 800억 달러(약 116조 2000억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오픈AI는 초대형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에 참여하고 있다. 스타게이트 투자 규모는 최대 5000억 달러(약 730조 원)로 전망된다.
이런 이유로 포지트론 등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빅테크들도 ASIC 생산에 나서고 있다. 오픈AI는 연내 자체 ASIC 설계를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대량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ASIC 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인 브로드컴도 AI 가속기 시장의 80%를 장악한 엔비디아 칩을 대체하기 위해 빅테크와 협력하고 있다. 브로드컴은 구글과 메타에 ASIC 설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JP모건에 따르면 AI ASIC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120억 달러에서 2027년 300억 달러로 연평균 34%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브로드컴은 2027년 자사 매출이 600억~9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ASIC이 AI 추론 영역에서 엔비디아 칩을 대체한다면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도 다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 공급 여부가 메모리 기업의 실적으로 연결되고 있는데 ASIC이 대중화한다면 메모리 영역에서도 맞춤형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6세대 HBM(HBM4)부터는 고객 맞춤형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모두 관련 제품을 준비 중이다.
DS투자증권은 "자체 ASIC에서는 메모리와 프로세서 간의 최적화를 위해 커스텀(맞춤형) HBM의 설계 필요성이 증가할 것"이라며 "한국 메모리 업체들은 중국 경쟁사의 범용 메모리 위협 속에서도 커스텀 HBM 전략으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AI 모델 경량화에 따라 GDDR(그래픽 더블데이터레이트)와 LPDDR(저전력 더블데이터레이트) 등 메모리가 HBM을 대체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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