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 2024년 12월 3일 오후 11시 윤석열 전 대통령이 45년 만에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야기된 국정 불안정은 지난 4일 오전 11시 22분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탄핵 심판으로 종결됐다.
그러나 반헌법적 계엄 선포가 국회에 의해서 해제된 이후에도 '현직 대통령 체포'와 탄핵 심판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증폭된 사회 갈등은 헌재의 결정으로 종식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우려하듯 그 불씨는 여전히 남은 정치 일정에서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태극기 부대'로 지칭됐던 소규모 친박 단체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반문 정치'를 기치로 반민주당 기독교 우파단체가 주도하면서 그 세력은 이제 우리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뇌관이 될 정도 커졌다. 갈등의 양상 또한 전통적인 반공주의에서 성소수자 혐오를 노골화한 차별금지법 반대, 반페미니즘 등으로 다변화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 서울서부지법 폭동처럼 반헌법적 폭력을 자행하는 이들을 극우 파시즘으로 지칭하기도 하지만, 극우 포퓰리즘적 사회운동의 현상을 극우 파시즘이 재현된 것으로 재단하기는 어렵다. 아직 이들에게는 기존의 파시즘 운동과 같은 사상적 리더나 이념, 정치적 정당이나 운동조직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결코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극우 포퓰리즘적 현상은 2007~8년 대침체 이후 경제위기가 해결되지 못하고, 소위 4차 산업혁명 혹은 디지털 혁명으로 알려진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산업 전환이 오히려 사회적 블평등을 심화하면서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보인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사회 갈등은 사회 발전의 역동성으로 작용하므로 갈등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사회 통합의 비전과 가치가 사회 구성원에게 공유되면 사회 통합은 일정한 혼란과 불가피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규범적, 법적 제도화를 통해서 완성된다.
20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사회 통합의 모범적 사례는 '민주적 복지국가'였다. 복지국가에서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빈곤은 주변화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는 근대화 이후 강력한 권력의 주체가 됐다. 사상적 기원에 있어서 반국가주의적 성향을 띄던 진보, 국가보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던 보수 진영 모두 20세기에 국가 권력에 집중한 나름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문제는 21세기의 글로벌 환경이 국가 주도적 사회 갈등 해결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에서 국가는 전통적 복지국가의 책임 일부를 지역에 넘겨주고, 경쟁을 가속했다. '글로벌 거버넌스'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최소화된 지원에 의한 지역사회의 일부 성공적 생존전략은 전 지구적으로 벤치마킹됐으며, 20세기 중반에 약화했던 지방분권은 서서히 복원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21세기에 지방분권의 시대가 활짝 열렸지만, 자립 능력 없는 분권은 생존을 위한 정치적 선택을 강요받고 대선에서 정치적 거래를 노골화하는 '묻지 마 투표'라는 퇴행적 정치문화만 양산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우리는 경제의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라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청년이 지방을 떠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소득을 예로 들면, 2024년 기준 지역별 소득이 전국 평균보다 높은 지역은 서울, 울산, 세종, 경기도뿐이다. 애향심으로 청년을 지역에 눌러 앉힐 묘안은 없어 보인다.

세계 경제 대침체 이후 전 세계는 2% 안팎의 저성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각종 국제기구의 경제 전망처럼 일시적이 아니란 것이다. 윤정부 들어 한국은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하기도 했는데, 이는 단지 정권 교체의 문제로 해결될 상황은 아니다. 한국형 수출 주도적 성장 모델은 저성장 국면에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위기는 공교롭게 그간 수출 주도적 경제 성장의 엔진 역할을 했던 지역에 가중되고 있다. 산업 전환에 뒤처진 지역에는 여전히 경쟁력이 약한 전통적 제조업이 다수 존재하고, 일부 경쟁력 있는 기업은 생존을 위한 빠른 자동화 전략으로 고용이 정체된 지 오래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기업 이전과 공장 폐쇄 등으로 이어지면서 지역 공동화가 더 빠르게 가속화될 것이다. 이를 방치할 경우 다원화된 가치의 갈등이 불평등과 중첩되면서 다시 권위주의 시대로의 회귀를 꿈꾸는 포퓰리즘적 사회운동이 확산할 위험이 있다.
20세기의 '황금시대'는 삶의 물질적 조건을 개선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으로부터 사회 통합과 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었다. 이런 아름다운 성장사회 모델은 이제 더 이상 전 세계 어디에도 가능하지 않게 됐다.
저성장과 기후 변화의 악조건에서 수출 주도적 성장모델을 탈피하는 기회는 '포스트 성장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즉 수출 주도 경제에서 디지털 전환과 탈탄소화라는 거대한 산업 전환의 충격을 지역에서 흡수하는 방식인 지역 주도의 내수경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많은 이해 당사자의 갈등이 동반될 것이다. 그래서 지역 소멸을 이야기하는 대신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는 여전히 좋은 자원들이 있다. 우리나라 지역의 대학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양질의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세계시민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지역대학들은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인공지능(AI)과 자동화로 대변되는 디지털 전환에 적극 대응하면서, 중장기적인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삶의 양식을 개선하는 글로컬 역량을 갖추고 있다.
청년의 보수화, MZ세대의 특이성을 앞세운 과잉 정치화와 시장화 대신 지역 청년에 대한 과감한 투자 방식인 교육, 직업훈련, 평생학습을 통해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것만이 가장 효과적인 사회 통합의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