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대중주의로 번역되는 포퓰리즘(populism)이 전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좀 장황하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를 요약해 소개하자면, 경제적 불평등 심화와 기술 혁신에 따른 고용 불안, 이민자 유입과 성소수자 권리 강화 등에 따른 기존 가치의 위협, 기득권 엘리트들과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 속에서 소셜미디어의 발전과 맞물려 민주주의 원칙인 다원주의를 부정하는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전세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포퓰리즘의 일반적 특징으로 엘리트 기득권에 대한 적대감과 대중 동원, 특정 사회집단 배제, 감성 자극적 단순 정치 논리, 가부장적 리더십을 갖춘 카리스마적 지도자 등을 꼽는다면, 2003년부터 23년째 튀르키예를 이끌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71) 대통령을 첫손에 꼽아야 한다. 21세기 포퓰리즘은 에르도안이 만들었다는 찬사와 함께, 트럼프 1기 행정부를 보면 미국이 튀르키예처럼 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포퓰리즘 정치라면 무엇보다 '편가르기'에 능해야 한다. 국민 갈라치기다. 에르도안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국민'과 '부패한 엘리트'로 나누는데 전자는 '블랙 튀르키예인(Black Turks)'으로, 후자는 '화이트 튀르키예인(White Turks)'으로 불린다. 튀르키예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는 '화이트 튀르키예인'은 1923년 튀르키예 건국 이후 첫 80년간 이 나라의 요직을 장악한, 서구화된 도시 거주 엘리트를 칭한다. 이들에 향한 보수 무슬림과 지방 서민층의 누적된 불만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에르도안은 국민들의 뜻에 반한다면서 엘리트층을 내부의 적으로 묘사하고 더 나아가 실체가 모호한 외부 세력까지 끌어들여 튀르키예 국민들이 맞서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자신을 강인한 마초 리더로 내세웠다. 현시대의 술탄(이슬람 통치자)으로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유산을 지키는 인물로 자신을 대중에 드러냈다. 수도 앙카라에 있는 초호화 대통령궁에 외국 고위 관리들이 방문하면 에르도안은 터키 전통 복식을 갖춰 입은 16인의 전사에 둘러싸여 이들을 맞는다.
종교적 색채도 크게 강화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가 터키공화국을 설립하며 칼리프제 폐지, 정·교 분리, 종교의 자유 보장, 남녀평등교육, 일부다처제 폐지, 여성의 선거권, 아랍문자 폐지와 알파벳 사용 등의 강력한 서구화 정책을 폈는데 에르도안은 친이슬람 정책으로 이를 흔들었다.
그는 2001년 이슬람에 뿌리를 둔 현 집권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하며 학교 내 종교 교육 강화, 세속주의의 상징이었던 공공기관에서의 히잡 제한 해제, 알코올 금지지역 확대 및 간통죄 도입 추진 등을 추진하며 보수 무슬림의 환심을 샀다. 이스탄불의 대표 건축물 아야 소피아(성 소피아 성당)는 이슬람 모스크(사원)로 개조했다.

이와 맞물려 '여성은 모성애를 우선시해야 한다', '여자아이들은 18세, 가능하다면 더 어린 나이에 결혼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을 동등하게 대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들을 비난했고, 성소수자는 배제했다. 야권에선 에르도안이 튀르키예를 신정(神政)국가 이란처럼 바꾸려한다고 질타했다.
편가르기는 '내 편 챙기기'로 확장됐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표밭인 공무원들과 최저 임금 노동자들은 알뜰하게 챙겼다. 2002~2023년에 평균 공무원 임금은 21배 증가했다. 2023년 2분기에 최저 임금은 5년 전과 비교해 5배 늘었다. 하지만 엘리트층은 괄시했다. 예를 들어, 대학 교수의 경우에 평균 임금은 2014년엔 최저 임금의 6.6배였지만 2018년에는 5.7배로, 2023년엔 3.9배로 줄었다.
장기 집권의 발판도 만들었다. 에르도안은 최말단 공무원 임명에도 관여하며 관료사회를 강하게 통제해 자신의 탄탄한 지지 세력으로 만들었다. 튀르키예에서 세속주의의 수호자로 여겨지는 군(軍)의 2016년 쿠데타 실패 이후엔 수만 명의 공무원을 해고했고 AKP에 대한 '충성 심사'도 도입했다. 과거엔 공직자로서 유능함이 최우선 가치였는데 지금은 충성이 으뜸이란 비아냥도 나온다. 튀르키예 정부는 2016년 쿠데타에 대해 성직자 페툴라흐 귈렌이 창설한 '귈렌 운동'의 군 내부 추종자들이 배후 조종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일자리와 사회적 혜택 등을 제공하며 AKP의 당원도 크게 늘려, 지역사회까지 강력한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인구 8500만의 튀르키예에서, AKP는 약 1120만 명의 등록 당원을 보유하고 있다. 최대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경우엔 130만 명에 불과하다.
보조금 등 당근과 과세 등 채찍을 통해 대기업들도 자기 세력으로 만들었다. 2010년대 들어 공공-민간 파트너십(PPP) 프로젝트가 크게 증가했는데 친정부 기업이 도맡았다. 병원과 공항, 도로 교량 등 대규모 건설사업은 에르도안이 성과를 내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전파하는 선전 역할을 했다. 특혜에 대한 보답으로 친정부 기업들은 미디어 부문에 투자해 정부가 정보 환경을 통제하는 데 도움을 줬다. 국경없는기자회(RSF)에 따르면 튀르키예 주류 언론 매체의 약 90%가 정부 혹은 친정부 세력과 제휴를 맺고 있거나 이들의 통제 하에 있다.
이외에도 에르도안은 법원에 자기 사람 심기, 시민단체 탄압 등으로 권력을 공고히 했다. 지난해 유엔의 '법관과 변호사 독립 특별보고관'인 마가렛 록우드 새터스웨이트는 튀르키예 사법부에 대한 체계적인 정부 간섭 행태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사법부 자율성 침해, 판·검사 대량 숙청 문제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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