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뉴스1) 윤왕근 기자 = 을사년(乙巳年) 새해 첫날이었던 지난 1일 삼척과 포항을 잇는 동해중부선(166.3㎞) 구간이 개통하면서 부산(부전역)에서 강릉까지 한반도 척추가 연결됐다.
동해선 개통으로 그동안 강릉이나 속초에 비해 각광받지 못한 삼척과 동해 등 강원 남부권이 주목받고 있다. 비교적 개발이 덜해 아직 천혜의 모습을 간직한 이곳은 박찬욱, 허진호 등 국내 영화 거장이 사랑한 곳이기도 하다. 동해선을 타면 그 시절 명화(名畫)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동해선을 타고 강원 동해시 묵호역에 내리면 한국 멜로영화 최고 수작으로 꼽히는 허진호 감독의 2001년 작 '봄날은 간다'의 주 무대를 만나볼 수 있다.
묵호역에서 택시 기본요금 정도면 극중 은수(이영애)가 살던 등대마을인 '논골담길'로 향할 수 있다. 걸음에 자신이 있다면 앱 지도를 켜고 도보로 가도 된다.
극중 은수의 집은 강릉으로 나오지만 실제 촬영장소는 동해 묵호동 '삼본아파트'다. 이젠 개그코드가 된 "라면 먹을래요?"라는 대사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외벽 도색 정도를 빼면 크게 변한 것이 없어 영화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 영화는 사랑의 '생로병사'를 그린 작품이다. 은수와 상우(유지태)의 사랑의 시작, 권태가 찾아와 관계에 병이 들고 결국 이별에 이르는 과정이 이 마을에서 그려졌다.

묵호항을 비추는 등대가 인상적인 이 마을은 원래 어부와 아낙이 모여살던 곳이다. 높은 지대에 해풍이 불어 전국 최고 오징어 덕장으로 유명했다.
'물도, 바다도 검다'는 지명 유래처럼 묵호(墨湖)는 한때 강원권 최대 무연탄 집하지였다. 어업과 석탄산업이 쇠퇴한 후 청년 작가들이 벽화로 등대마을을 다시 꾸미면서 이즈음 '논골담길'이라는 이름이 다시 붙었다.
기차를 타고 삼척 근덕역에 내리면 박찬욱 감독의 2022년 작 '헤어질 결심'의 후반부 주요장면이 촬영된 '부남해변'으로 향할 수 있다.
이곳은 삼척 시내에서도 대략 20㎞ 정도 떨어져 있고, 근덕 읍내에서도 꽤 거리가 있어 지역 사진작가나 스노클링 동호인 정도만 알던 '프라이빗 해변'이다. 마을에 도착해서도 좁은 골목을 지나 대숲으로 둘러쌓인 계단을 내려가서야 영화 속 대사처럼 '마침내' 이 해변을 만날 수 있다.
주인공 서래(탕웨이)가 사라져 가는 장면이 촬영된 이곳은 크고 작은 바위에 해변이 둘러쌓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다'는 영화 속 대사와 너무도 날 어울리는 곳이다. 갯바위 속 뜬금없는 '당집'(신을 모시는 집)도 더욱 신비한 느낌을 준다.
사실 삼척은 영화감독들이 사랑하는 도시다. 허진호 감독의 '외출' '봄날은 간다' 등이 신흥사 대숲, 팰리스호텔 등에서 촬영됐다. 이제는 세계적인 스타가 된 BTS의 버터(Butter) 앨범 재킷 촬영지인 맹방해변도 부남해변 근처다.

동해선의 종착역인 강릉역에 도착하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글로리'의 마지막회 촬영지인 '소돌 방파제'가 있다.
극중 문동은(송혜교)과 주여정(이도현)이 빨간 등대에 기대어 맥주를 마시던 곳이 소돌 방파제다. 눈발이 흩날리는 밤 빨간 등대의 풍경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소돌방파제에서 4~5㎞떨어진 곳에는 2016년 방영됐던 드라마 '도깨비'의 명장면이 담긴 '도깨비 방사제'를 만날 수 있다.

극중 김신(공유)이 은탁(김고은)에게 메밀꽃을 건네던 바로 그곳이다. 이 드라마가 히트하면서 한때 이곳은 빨간 머플러를 한 '현실 김고은'과 꽃을 든 '현실 공유'로 가득하기도 했다.
두 드라마는 모두 김은숙 작가가 집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강릉은 김 작가의 고향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 작가의 작품엔 언제나 아름다운 강릉의 풍경이 담긴다.
강릉시는 더글로리 등대가 있는 소돌항과 도깨비 방사제가 가까운 영진항을 잇는 편도 4.8㎞ 규모의 '북강릉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wgjh654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