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형준 기자 = '혼틈'. '혼란스러울 때, 그 틈을 노린다'는 뜻을 가진 인터넷상의 신조어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의 기관장 인선을 취재하며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이기도 하다.
길게는 1년 이상 리더십 공백을 겪었던 중기부 산하기관들의 기관장 인선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에만 창업진흥원장과 신용보증재단중앙회장 등 두 명이 새로 취임했다.
창업진흥원장 자리는 2024년 2월 임기 만료를 4개월여 앞두고 김용문 전 원장이 물러나면서 최근까지 공석이 이어졌다.
원장직은 유종필 전 서울시 관악구청장이 새롭게 수행하게 됐다. 유 신임 원장은 1998년 김대중 정부의 대통령 비서관을 지내고 더불어민주당에서 관악구청장을 거쳤다. 창업진흥원장 취임 전엔 국민의힘 관악구 갑 당협위원장을 맡았다. 대부분 경력이 정치분야로 창업 지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많았다.
신보중앙회장 자리에는 중기부의 실장급 공무원이 가게 됐다. 소상공인정책실장을 지낸 원영준 전 실장이 주인공이다. 원 신임 회장은 지난 19일 조용히 취임식을 치르고 업무를 시작했다. 전임 회장인 이상훈 회장의 임기는 지난 2024년 10월 종료됐지만 인선 작업이 늦어지며 최근까지 유임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관가 안팎에서는 한국벤처투자 대표이사 자리에도 중기부의 실장급 인사가 내정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벤처투자 대표직은 지난 2023년 11월 이후 줄곧 공석이었다. 유웅환 전 대표가 2년에 가까운 임기를 남기고 돌연 자리에서 물러나면서다.
중기부의 산하기관은 아니지만 유관기관인 소상공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자리에도 중기부 산하 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출신의 인사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정부 정책 집행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산하 공공기관장의 공백은 신속하게 메워져야 마땅하다. 공석이 길어지면 정책 추진 동력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중기부 산하기관의 인선이 빈축을 사는 이유는 바로 '타이밍'에 있다.
길게는 1년 3개월여의 시간이 있었지만 기관장 인선을 지지부진하게 끌고 온 중기부와 산하기관들이 계엄 사태 이후 혼란한 정치 상황과 관가의 분위기 속에서 말 그대로 '혼틈' 인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취재를 하며 만난 한 관가 관계자는 "최근 이뤄진 인선은 누가 봐도 타이밍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정치권이든 정부 부처든 불안정한 상황을 이용해서 자리를 챙기려 한다고 보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야당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들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이 불안정한 과도기 상황에서는 웬만한 인사는 중단하고 최소한의 공백을 유지하는 게 상식"이라며 "이는 국정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의도적인 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총 11개의 산하기관 중 절반에 가까운 5곳이 수장 공백을 겪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어수선한 틈을 타 저마다의 '몫'을 챙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앞서 언급한 기관들 외에도 중기부 산하기관 중 기술보증기금과 공영홈쇼핑이 기관장 인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앞선 인사들과 같이 '알박기' 또는 '혼란을 틈탄' 인사라는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관련 경험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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