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민주 기자 =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정국이 조기 대선 체제로 급속히 전환되면서 그간 정치권 패싸움에 묻혀 외면받던 중소기업·소상공인계의 현안들이 다시금 주목받는 분위기다.
경기 침체와 글로벌 통상환경 악화 등 '최악의 위기'를 맞은 중소기업계는 주 52시간제 유연화, 최저임금 제도 개편 등 숙원 과제들의 해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호소하며 대선주자들이 내놓을 풀이법에 집중한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는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기일에서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다. 파면이 결정되면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2개월 더 대행을 수행하게 됐다. 대통령 선거는 늦어도 6월 3일에는 치러질 전망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정치권의 조기 대선 모드 전환에 맞춰 중소기업계는 그동안 뒷전으로 밀렸던 중소기업 주요 현안 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그간 줄곧 △주 52시간제 유연화 △최저임금 제도 개편(주휴수당 폐지) △중대재해처벌법 완화(예외 조항 신설 등) △정책금융·세제지원 확대 등을 요구해 왔다.
특히 주52시간제 유연화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올해 중점 개선을 추진 중이던 핵심 과제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수출 중소기업의 56%, 제조 중기의 27.6%가 현행 주52시간제로 인해 수주와 납기 준수에 문제를 겪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추가 근로가 필요한 상황에서 근로자들도 소득을 위해 추가 근로를 할 의향이 있어도 주52시간제로 인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지난 정부가 주52시간제와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만들어서 경제계는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미국은 연장근로를 제한하는 규정 자체가 없는데 유독 한국의 기업들만 (근로 시간 제한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선을 위해 2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간담회를 갖기도 하고 더불어민주당 산자중기위·기재위 위원들을 만난 바 있다.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 제도 개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연초 올해 최저임금 제도 개선 등에 역량을 결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1일부터 모든 사업장에서 시급 기준 최저임금 1만 30원을 적용하고 있다. 2024년 최저임금이었던 9860원 대비 1.7% 인상한 수준이지만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만 원 선이 붕괴하면서 자영업자들은 '버틸 힘을 잃었다'고 탄식한다.
특히 소상공인들은 '주휴수당 폐지'를 중점 요구하고 있다. 주휴수당은 근로자가 유급 주휴일에 받는 돈이다. 올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일 8시간씩 한주에 이틀 근무할 경우 주당 16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하면 한 달(4주) 월급은 64만 1920원이다. 고용주는 여기에 주휴수당 12만 8384원을 지급해야 하는 이를 근무시간으로 나누면 시간당 2000원가량을 추가로 주는 셈이다.
송치영 소공연 회장은 "최저임금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오르며 소상공인과 우리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제도가 됐다. 주휴수당 때문에 초단시간 근로자가 10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며 "일본은 이미 주휴수당을 폐지했고 임금이 낮은 멕시코, 태국 등에나 남아있는 낡은 제도가 고용시장을 왜곡하고 있다. 소상공인과 취약 근로자 모두 불행한 쪼개기 근로를 양산하는 주휴수당은 폐지돼야 한다"고 했다.

이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생존을 건 외침은 그간 정쟁으로 인해 외면을 받아왔으나 조기 대선 정국으로 전환되면서 현장에서는 일부 기대감이 감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호소를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주52시간제도 개선과 최저임금 제도 개선 외에도 중대재해처벌법 개선과 정책지원 확대(추경)에 대한 요구도 높다.
조기 대선을 의식한 여야 정치권도 이미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등에 현안 해결을 약속하며 표심 모으기 작업을 다져놨으며 앞으로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달 25일 중견기업들을 만나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속세법 개정안과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에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만나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과감히 풀고 기업에 날개를 다는 지원책 마련을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만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달 2일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장을 만나 추가경정예산 편성의 필요성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보였다. 다만 최저임금제도 개선 요구에 대해서는 노동계와 소상공인의 상생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답변을 하며 유보적 입장을 전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그간 주요 현안에 대한 개선 목소리를 냈지만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반영이) 더뎠던 부분이 있지만 우리의 문제는 정쟁을 넘어 꼭 다뤄야 할 경제 생존의 문제"라며 "조기 대선 정국이 중소기업계의 목소리를 다시 정책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당은 선거용 공약이 아닌 이행 가능성이 있는 정책 대안을 제시해 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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