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대한민국 혁신산업, 백척간두에 섰다

[혁신이 죽었다①]벤처 빙하기 돌입…생존조차 불투명
상장해도 기업가치 반토막…모험자본 투자 역량 미흡

'CES 2025'가 열리고 있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오가고 있다. 이번 행사는 '다이브 인'(몰입)을 주제로 전 세계 160개국에서 4,500여 개 기업이 참여해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2025.1.10/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CES 2025'가 열리고 있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오가고 있다. 이번 행사는 '다이브 인'(몰입)을 주제로 전 세계 160개국에서 4,500여 개 기업이 참여해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2025.1.10/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편집자주 ...'대한민국 혁신은 죽었다'는 탄식이 나온다. 전세계 혁신을 이끌고 있는 인공지능(AI) 대열에서 대한민국은 사실상 낙오됐고, 여타 산업에서도 기술 우위를 점한 분야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아직 저력이 있다. 골든타임은 되살릴 수 있다. IMF도 극복해낸 민족이다. <뉴스1>은 2025년 새해를 맞아 대한민국 혁신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혁신, 정책, 자본시장 전문가를 만났다.

(서울=뉴스1) 강은성 이정후 기자 =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2025가 화려한 막을 올렸다. 이번 CES에서 대한민국 기업들은 무려 129개의 'CES 혁신상'을 휩쓸었다. 지난 2024년 116개로 역대 최다 혁신상 수상 기록을 썼는데 이번 행사에서 이를 넘어섰다.

그런데 국내 혁신전문가들은 CES 성과에 '취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혁신산업은 현재 '코마'(혼수상태)이며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무서운 진단마저 내린다. CES와 국내 전문가들의 시각 간극이 너무 크다.

구태언 한국스타트업포럼 부의장(법무법인 린 변호사)은 "삼정KPMG가 올해 CES 트렌드로 제시한 △AI·로보틱스 △모빌리티 △확장현실 △스마트홈 △디지털 헬스케어 △ESG 등 6가지 트렌드 중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우리나라 스타트업 이름을 하나씩 댈 수 있나"라고 질문을 던졌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핵심 6대 분야에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는 것이 구 부의장의 평가다. 혁신상에 취하면 안 된다는 냉정한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도 동일한 지적을 한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유니콘의 등장이 급격히 어려워지고 있다. 아니 유니콘이 나올 수가 없는 토양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면서 "이미 창업'신'(업계)에는 인재 공급이 끊겼고 '창업절벽'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산업이 바뀌는 시기였는데 우리는 이걸 놓쳤다"며 "때문에 경쟁력을 잃었다"고 탄식했다.

본문 이미지 - &#39;CES 2025&#39; 개막일인 7일&#40;현지시간&#41;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스피어에 로봇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2025.1.8/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CES 2025' 개막일인 7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스피어에 로봇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2025.1.8/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벤처 빙하기 돌입…혁신은커녕 생존도 불투명

국내외 경제환경은 혁신에 뒤처진 업계를 '생존'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그간 적자를 감수하며 투자금으로 버티던 기업들 사이에서 폐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었는데 올해는 기대감마저 갖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대부분이다.

스타트업 투자정보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 2024년 1~3분기 폐업한 스타트업은 144개를 기록했다. 2022년과 2023년 같은 기간에 각각 92개, 119개보다 증가한 수치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사무총장은 "2022년부터 불경기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벤처기업들의 유동성이 악화한 상황"이라며 "글로벌 시장에서 기회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외부 변수들이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지난 연말 벌어진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여파로 환율이 치솟고 한국 기업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기업가치(밸류에이션) 평가가 박해진 것도 벤처, 스타트업엔 충격으로 다가온다.

충당금을 쌓고 환율 충격에 대비할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벤처, 스타트업은 외부 투자가 중단되는 순간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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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혁신, 이젠 '월'(月) 단위로 바뀌는데…규제가 발목

문제는 현재 국내 벤처, 스타트업이 처한 위기가 지난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전세계적으로 '동일한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권의 분탕질로 환율이 치솟고 주가가 하락하고 한국 기업의 신인도가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 시점에서 벤처, 스타트업이 이를 지켜보고 있는 3개월, 6개월의 시간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자칫 '낙오'될 수 있는 위험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구태언 부의장은 "글로벌 혁신 시계는 더욱 빨라져 1년은커녕 반기, 분기, 혹은 월 단위로 변화하고 있는데 국내는 작은 규제 하나 바꾸려 해도 2년씩 걸리는 데다 '기득권'을 쥐고 있는 전통 직역과의 갈등 하나도 중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스타트업계는 '규제 철폐'를 정부와 정치권에 늘 요구해 왔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창업 생태계 관계자의 60%는 '스타트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막는 규제 및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은 국회의 '디지털경제3.0포럼' 출범식에서 국내 기업은 각종 규제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투자가 막혀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플랫폼 규제가 생기면 기업들이 투자를 해도 이를 회수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적인 투자 역시 감소하며, 특히 외부 투자 유치가 필요한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 악순환"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유럽에서 시행하는 디지털시장법(DMA)이나 일본의 '특정 디지털 플랫폼법'은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만 규제하는 법안으로, 우리나라는 현행법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자생력을 키워주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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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벤처 투자 '모험자본' 얼어붙었다

벤처·스타트업 위기의 '본류'는 결국 '자금'이 흐르지 않아서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의 AI 개발 투자금 계획은 7조 달러(9708조 원)이지만 네이버는 7억 달러(9712억 원)로 1000배 차이가 난다. 돈이 있어야 혁신도 된다는 의미다. 특히 외부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벤처와 스타트업은 고금리, 고환율로 자본시장 꽁꽁 얼어붙은 여파를 직격으로 맞고 있다.

실제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누적 국내 벤처투자 금액 규모는 8조 6000억 원이다. 전년대비 11% 이상 늘었다.

그런데 업력 3년 이하의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는 2023년보다 24.8% 감소했다. 또 벤처투자를 집행하기 위한 실제 펀드 결성 규모는 8조 2000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4.1% 감소했다.

펀드 출자자 구성 비율은 모태펀드 등 정책금융이 24.4%로 전년 대비 10.6%포인트 증가하고 그만큼 민간 출자자 비중이 줄면서 공적 자금 의존도가 높아졌다

민간 모험자본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얘기다.

벤처투자가 얼어붙는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투자회수'가 어렵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의 상장이 꽉 막혀 있기 때문.

우리나라 벤처기업은 타 국가에 비해 매각이나 인수합병(M&A)이 현저히 적고, 기업공개(IPO)로 투자회수가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난해 코스피는 하락을 거듭했고 코스닥의 수익률은 전쟁 중인 러시아를 제외하면 꼴찌 수준이었다.

한상우 의장은 이처럼 국내 주식 시장이 위축된 것을 현재 스타트업의 위기 요인으로 지목했다. 스타트업이 IPO에 성공해야 벤처캐피탈과 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하고, 이 돈이 다시 초기 스타트업에 공급될 수 있는데 이 고리가 끊어져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기업가치가 1조 원 이상씩 하는 기업들이 많아야 하는데 요즘엔 IPO를 하면 (주가가) 반토막 나는 경우가 많다"며 "IPO 직전에 받은 기업가치가 더 높다 보니 상장 자체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본문 이미지 -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39;컴업&#40;comeup&#41; 2024&#39;이 국내외 벤처기업가들로 붐비고 있다. &#39;컴업&#39;은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를 전 세계에 알리고, 국내외 스타트업, 투자자 등 전세계 스타트업·벤처 생태계 구성원이 교류하는 장으로서 올해로 6회째를 맞았다. 2024.12.11/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컴업(comeup) 2024'이 국내외 벤처기업가들로 붐비고 있다. '컴업'은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를 전 세계에 알리고, 국내외 스타트업, 투자자 등 전세계 스타트업·벤처 생태계 구성원이 교류하는 장으로서 올해로 6회째를 맞았다. 2024.12.11/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끼리끼리' 투자하는 '클럽딜'…혹한기 폐해 늘린다

국내 벤처캐피탈의 역량이 해외에 비해 미흡하다는 쓴소리도 있다.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지낸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는 "국내 모험자본 투자자는 다소 중단기 투자에 집중된 경향이 있다. 글로벌 대형 운용사 등 해외 자본의 경우 장기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내 운용사나 벤처캐피탈은 수년 내 성과를 내야 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강대준 인사이트파트너스 대표회계사는 국내 벤처캐피탈이 '클럽딜'에 의존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클럽딜이란 벤처캐피탈들이 투자할 때 미리 의견을 교환하고 유사한 투자를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즉 심사역들이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게 아니라 심사역끼리 친분에 의해 함께 투자하는 행위다.

강 대표는 "클럽딜을 하면 투자 심사에서 통과될 확률이 높고 위험도 분산할 수 있으니 이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투자 혹한기에는 클럽딜의 폐해가 더 커진다"고 진단했다.

벤처캐피탈들이 좋은 기업을 발굴하고 투자할 역량을 갖췄다면 상관없지만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다 같이 투자하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창업가나 투자자의 '투자회수'에 대해 지나치게 경직된 사회적 분위기도 있다.

강 대표는 "창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창업가는 고용 창출 등 국가 경제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는 만큼 우리 사회가 이들에 대한 존중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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