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뉴스1)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 "미카(MICA)는 우리가 유럽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려면 전통 금융기관 파트너들이 꼭 필요한데, 규제가 마련돼 있으니 그 규제만 준수하면 파트너들에게 신뢰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마크 제닝스(Mark Jennings) 제미니 거래소 유럽 총괄은 지난 8일 '파리블록체인위크(PBW) 2025' 행사에서 '미카(MICA)' 시행이 제미니 사업에 미친 영향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유럽의 가상자산 법안, '미카(MICA)'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지난 2023년 5월 말 법률로 공식 제정된 미카는 '암호자산 시장에 관한 법률안'의 약자로, 유럽연합(EU)의 가상자산 단독 법안이다. 조항 중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조항만 지난해 6월 30일부터 시행됐으며 나머지 조항들은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시행됐다. 따라서 사실상 올해가 미카 시행의 원년인 셈이다.
미카는 일찌감치 초안이 나온데다, 27개 EU 회원국에 적용되는 만큼 효력의 범위도 크다. 미국에서 '친(親) 가상자산' 정부가 등장한 가운데, 이에 대응해야 하는 유럽 국가들에게 미카는 가상자산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미카의 가장 큰 특징은 가상자산을 종류별로 구분하고, '암호자산서비스제공자(CASP, Crypto Asset Service Provider)'에 대한 규제를 마련해 사업자 인가제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미카에서는 가상자산을 △유틸리티토큰 △자산준거토큰 △이머니토큰 등 세 가지로 구분하고 차등화된 규제를 도입했다. 이 중 자산준거토큰은 법정화폐나 다른 가상자산에 준거해 가치를 유지하는 토큰이며, 이머니토큰 역시 법정화폐와 연동돼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토큰을 말한다. 즉, 두 가지 모두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 규제안을 마련한 것은 가상자산 규제 선진국으로 알려진 홍콩보다 빠르다.
가상자산 관련 사업자는 '암호자산서비스제공자(CASP, Crypto Asset Service Provider)'로 정의하고 서비스제공자를 여러 가지로 분류했다.
△가상자산 위탁보관 서비스제공자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 운영자 △가상자산 교환 서비스제공자(법정화폐·가상자산 각각) △가상자산 주문집행 서비스제공자 △가상자산 모집 주선 서비스제공자 △가상자산 컨설팅 서비스제공자 △가상자산 포트폴리오 운용자 △가상자산 이전 서비스제공자 △가상자산 주문 접수 서비스제공자 등 종류가 10개에 달한다. 가상자산 거래사업자, 보관관리업자, 지갑사업자 등 세 가지로만 분류한 국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보다 훨씬 다양하게 사업자를 분류했다.
사업자들에 대해선 각각 운영 조건을 규정했다. 해당 조건을 충족해야만 라이선스를 받고 사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가상자산사업자 '인가제'를 도입한 셈이다. 이는 우리나라와의 공통점이다.
이처럼 비교적 꼼꼼하게 사업자 규제를 마련해둔 결과, 미카는 해외 기업이 유럽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 됐다.
특히 컴플라이언스 역량을 갖춘 대형 거래소들이 미카 준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케이엑스(OKX), 크립토닷컴 등 글로벌 대형 거래소는 이미 미카 법에 따라 라이선스를 확보했다.
미국 대형 거래소 중 하나인 제미니도 대표적인 사례다. 제미니는 올해 1월 몰타에 유럽 전담 허브를 설립하고, 미카 법상 라이선스를 확보해 유럽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공언했다.
제닝스 총괄은 "지금 미국에서는 '친 가상자산' 정부가 출범해 가상자산과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을 막 마련하려 하고 있다"면서 "지난 몇 년 간 미카를 제정하고, 또 시행해온 유럽이 오히려 미국에 청사진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규제 명확성이 유럽 진출을 결심한 큰 이유가 됐다는 것이다. 현재 제미니는 미카 법을 준수하면서 유럽에서 일반 및 기관투자자 모두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그는 "미카는 제미니가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했다. 규제 없이는 신뢰를 쌓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제미니는 지난 10년 동안 커스터디(수탁) 솔루션을 자체 개발해왔고, 보안을 최우선 가치로 뒀다. 하지만 규제 인프라가 마련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제미니 솔루션이 안전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기업뿐 아니라 기존 핀테크 기업들도 미카를 통해 가상자산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규제 명확성이 마련돼야만 가상자산 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구상에서다.
일례로 영국 결제 솔루션 기업 오픈페이드(Openpayd)는 지난해 유럽에서 가상자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라이선스를 신청했다.
이아나 디미트로바(Iana Dimitrova) 오픈페이드 최고경영자(CEO)는 "오픈페이드는 금융권에서 엄격한 규제를 준수해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사회 구성, 준비금 마련 등 미카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며 "규제 준수 면에서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서 가상자산 사업에 도전했다"고 밝혔다.
hyun1@news1.kr
편집자주 ...유럽연합(EU)의 가상자산(암호화폐) 단독 법안 '미카(MICA)'가 지난해 12월 30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정만 지난해 6월 30일부터 시행됐으며, 나머지 조항들은 12월 30일부터 시행된 만큼 사실상 올해가 미카 시행의 원년이다. 이에 따라 유럽 가상자산 시장에선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규제 명확성이 확보돼 유럽 시장으로 진출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미카 준수가 어려워 사업을 포기하는 스타트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뉴스1'은 유럽 최대 블록체인 콘퍼런스 '파리블록체인위크(PBW)'에 참가해 미카 시행 이후 유럽 가상자산 시장의 변화를 점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