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재해는 반복되고, 해법은 늘 비슷하다. 봄철이 시작하자마자 영남권을 중심으로 대형 산불이 이어졌다. 정부수립 이후 최초로 국가유산 재난 경보가 발령되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태풍급 강풍이 주된 원인으로 꼽히지만 겨우내 바싹 마른 대지와 나무가 땔감 역할을 했다. 적은 강수량이 또다시 기후 재난으로 연결됐다.
유엔대학 환경 및 인간안보연구소(UNU-EHS)는 이런 반복되는 재난의 원인을 기술 부족이 아닌 '사회구조 그 자체'로 지목했다. 최근 공개한 '상호 연결 재해위험'을 통해 UNU-EHS는 기후·생태·오염 위기가 겹치는 현상이 단순히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이 만든 시스템에 깊이 뿌리내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지금까지의 대응이 폐기물 재활용, 기술적 보완 등 결과 처리에 집중돼 왔으며, 문제를 낳는 사회 시스템과 가치관은 그대로 유지됐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딥체인지'(Deep Change) 필요성을 강조했다. 구조적 전환 없이 반복되는 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취지다. 플라스틱 폐기물과 산불, 생물종 멸종 등의 문제는 개별 사안이 아니라, 성장 중심의 경제체계와 '새것이 낫다'는 소비 관념, 인간이 자연을 통제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이 뿌리가 됐다고 보는 것이다. 사회 문제를 나무 열매에 비유하며, 과일만 갈아치우면 안 되고 뿌리를 바꿔야 한다고 표현했다.
전환이 시급한 분야로는 △폐기물 개념 재고 △인간-자연 관계 재조정 △책임 구조 재정의 △미래세대 고려 △가치관 재정립 등이 제시됐다. 예를 들어,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카쓰는 고도의 분리배출과 지역 공동체 중심의 순환 시스템을 통해 재활용률을 80%까지 끌어올렸고, 미국 플로리다의 키시미강은 훼손됐던 생태계 복원 이후 홍수 완충 기능을 회복하며 자연 기반 해법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기후위기의 책임이 평등하지 않다는 점도 강조된다.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국가나 계층일수록 피해는 더 크게 받고 있으며, 자원과 기회의 불균형은 기후위기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정책 결정의 시간 프레임 역시 현세대 중심의 단기 대응을 넘어,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UNU-EHS 지적이다.
구조 전환을 실현할 수단으로 UNU-EHS는 두 가지 지렛대를 제시한다. 하나는 사회와 개인의 인식을 바꾸는 ‘내부 지렛대’, 다른 하나는 제도와 정책 같은 ‘외부 지렛대’다. 두 수단이 함께 작동해야 변화가 지속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UNU-EHS는 "사회 시스템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인간이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재해는 반복되고, 해법은 늘 비슷했다. 그 반복을 끊기 위해선 똑같은 대응을 반복하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 UNU-EHS의 결론이다. 기술이 아닌 시스템, 결과가 아닌 원인을 들여다보는 전환적 사고가 없다면, '괴물 산불' 같은 재난은 앞으로도 형태만 바꿔 되풀이될 것이라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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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