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4000억 카드값으로 돈놀이한 홈플러스, 증권사 탓일까?

카드값 유동화 주체는 '돈이 절실한' 홈플러스…신영증권과 '발행규모' 사전 협의
신용강등 후에도 "수요 예측" 요청…기자간담회서는 증권사 탓

14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서 본사 앞에서 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3.1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14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서 본사 앞에서 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3.1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홈플러스는 카드로 물품을 구매했고, 증권사가 카드사의 카드물품채권을 사서 유동화한 것이다. 홈플러스가 투자자들에게 판매를 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내용을 모른다."

(서울=뉴스1) 강수련 김도엽 기자 = 홈플러스 최대주주이자 대한민국 최대 사모펀드 MBK의 김광일 부회장이 지난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4000억 원대 손실이 예상되는 홈플러스 자산유동화증권 전자단기사채(ABSTB) 피해 관련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홈플러스는 정말 몰랐을까?

요즘은 물건 살 때 현금 대신 카드를 긁는다. 돈을 준 것도 아닌데 카드 결제만 해도 바로 물건이 생긴다. 이때 카드값은 '빚'이다. 빚은 갚아야 한다. 공짜 카드는 없다. 다음 달 내 은행계좌에서 돈이 카드사로 빠져나가야 빚이 해결된다. 이때 내가 갚아야 할 빚으로 '돈놀이'를 했다면 누구의 소행일까? 나도 모르게 내 빚으로 누군가가 '이자놀이'를 한다면 가만히 있을 문제일까?

김광일 부회장의 답변에 적용해보자면 홈플러스는 자신들이 갚아야 할 카드값으로 증권사가 이자놀이를 했고, 그런데도 자기들은 알지도 못했다는 식이다.

과연 그럴까?

홈플러스 ABSTB는 '누구'의 결정인가

홈플러스는 롯데·현대·신한카드의 '구매전용카드'를 이용해 협력업체(납품업체)로부터 물품을 구매해 왔다. 카드사가 협력업체에 대금을 선납하면 카드사는 일종의 어음인 카드매출채권을 가지게 된다. 홈플러스는 구매전용카드를 이용해 조금 더 싼 가격에 물건을 '외상'하고, 카드사는 대기업의 매출채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홈플러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카드매출채권을 유동화해 '외상 기간'을 늘렸다. 카드값을 늦게 갚을수록 내 손에 들고 있는 현금 확보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신용등급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계속 하락했다. 재무구조 악화에 금용비용이 늘자 고육지책으로 '카드값'마저 유동화해 단기 차입금에 의존해온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ABSTB다.

유동화 결정의 주체는 홈플러스다. 카드값으로 돈놀이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이에 의존해온 곳은 홈플러스다. 증권사는 홈플러스의 '계획'을 '실행'한 곳이다.

홈플러스는 카드매출채권을 유동화해 줄 증권사를 물색했고, 신영증권이 ABSTB 발행 주관을 맡았다. 홈플러스가 신영증권과 카드매출채권을 유동화하기 위한 규모를 협의하고, 카드사에 요청해 유동화 계약을 맺었다. 이 경우 홈플러스는 카드대금 지급을 기존 1개월에서 3개월까지 미룰 수 있게 된다. 카드값을 늦게 갚을수록 내 손에 쥐고 있는 돈에 여유가 생기는 식이다.

계약에 따라 신영증권이 세운 페이퍼컴퍼니 SPC가 카드대금채권을 기초로 ABSTB를 발행해 투자자 자금을 모으면, 그 돈으로 홈플러스의 카드매출채권을 대납한다. 이후 홈플러스가 이자를 붙여 SPC에 상환하면 투자자들은 이익금을 갖는다.

이때 조건이 있다. 홈플러스가 카드값을 잘 갚아야 한다. 카드값만 갚으면 모두가 '해피엔딩'이다.

은행 이자는 2%대까지 떨어졌는데 6~7% 고금리 상품에 거액을 맡기고 따박따박 이자를 받은 투자자들도 지금까지는 투자 잘했다며 흐뭇했을 터다. 문제는 홈플러스가 더이상 카드값을 못갚겠다며 손을 들고 법원으로 달려가면서 이자는커녕, 원금도 못 돌려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고금리는 '고위험'이다.

결국, 자금 사정이 갈수록 빠듯해지는 홈플러스가 투자자들의 자금에 의존해서 물품대금을 마련하며 어렵게 마트를 운영해 온 것이다. 이 방식으로 홈플러스가 오는 5월까지 상환해야 하는 구매전용카드 미지급금은 4019억 원에 달한다. 이런 돈이 2년 전만 해도 2000억원대였는데 4000억 원대로 불어났다. 이런 사정을 홈플러스가 진짜 몰랐을까?

본문 이미지 - 조주연 홈플러스 사장과 임원들이 14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25.3.1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조주연 홈플러스 사장과 임원들이 14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25.3.1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홈플러스는 모르는 일이라면서 왜 신영증권은 찾아갔을까

홈플러스 재무담당자가 신용등급 하락 통보를 받은 이후인 지난달 28일 신영증권을 찾아간 것도 홈플러스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홈플러스는 신용등급이 A3-로 하락한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추가 채권 발행 규모를 확인하기 위해 신영증권 측에 "수요예측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홈플러스는 "기존 대비 발행 규모가 40%로 줄어든다"는 답변에 기업회생을 결정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기업 운영을 투자자들의 자금에 의존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자신들의 카드값이 유동화되고 있는 것도 몰랐다면 신영증권은 왜 찾아갔을까.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채권발행 규모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 왜 궁금했을까.

홈플러스는 기업회생을 신청하면 ABSTB 투자자들에게 손실이 전가되는 것을 몰랐을까. 그럼에도 ABSTB 판매 책임이 '증권사'에 있다고 회피하고 있다.

신영증권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자사의 ABSTB와 같은 증권이 리테일 판매됐는지 몰랐을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도 "홈플러스가 구매대금을 얼마나 카드로 결제했는지, 상환금액이 얼마나 청구될지 몰랐을 수 없다"며 "ABSTB 관련 손실의 최종책임은 홈플러스에 있다"고 했다. 카드를 긁은 사람은 홈플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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