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임기 막바지에 행사한 사면권에 대해 '오토펜'(autopen·자동서명기계) 사용을 이유로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오토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슬리피(Sleepy, 졸린) 조 바이든이 정치 깡패와 그 외 많은 사람들에게 내린 사면은 자동서명 기능으로 인해 무효이며 더 이상 효력이 없는 것으로 선언된다"고 말했다.
앞서 바이든 전 대통령은 지난 2021년 1월 6일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회 난입 사태를 조사한 하원 특별위원회 전·현직 의원을 선제적으로 사면한 바 있다. 트럼프 취임 후 이들을 상대로 보복 수사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오토펜 사용과 관련해 "바이든 전 대통령의 참모들이 불법적으로 사면에 서명했고, 바이든 대통령 본인도 이를 알지 못했다"고 추가 설명을 내놓았다.
오토펜은 특정인의 서명을 복사하는 장치로 필기도구가 장착된 기계 팔이 미리 입력된 서명을 그대로 따라 쓰도록 설계되어 있다.
연방 기록보관소에 따르면, 백악관은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할 때 대통령의 서명 샘플을 연방 기록보관소에 제공하고 해당 서명을 그래픽 이미지로 변환해 모든 대통령 문서에 사용한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직접 서명하지 않고도 하루에 수백 개의 문서에 서명할 수 있다. 오토펜을 처음 사용한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 그는 지난 2011년 프랑스에서 공식 외교 업무를 수행하던 중 '애국자 법' 연장안에 오토펜으로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과거 오토펜을 이용해 서명한 적이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오토펜을 이용한 서명은 '중요하지 않은 서류'에만 국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앞서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것에는 오토펜을 사용할 수 있지만 사면과 같은 중요한 문서에 오토펜을 사용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후 의사당 폭동 사태에 가담한 혐의로 수감된 이들을 사면할 때 자필로 서명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오토펜 사용에 대한 법적 제한은 없다. 지난 2005년 미국 법무부는 의견서를 통해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할 때 반드시 자필로 서명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미국 제4순회 항소법원도 "헌법에 대통령의 사면이 반드시 자필 서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제한은 없다"고 밝혔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대통령이 사면권 행사에 오토펜을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관련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바이든 전 대통령이 사면권 행사 때 자필로 서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의 앤드루 모란 정치학 교수는 "중요도가 낮은 문서에 오토펜을 사용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사면처럼 심각한 사안의 경우 바이든이 직접 서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이 오토펜을 사용해 사면권을 행사했다고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사면권을 무효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글로벌 민주주의 헌법 센터 소장인 데린 델라니 교수는 "트럼프가 바이든의 사면을 무효화하려는 시도는 헌법적 관례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이를 실행하려면 사면받은 이들을 다시 기소하거나 재판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법률 전문가인 해리 멜코니안 박사는 "(오토펜을 이용해) 바이든 전 대통령 모르게 사면이 이뤄졌다면 이는 '헌법적 실패'(constitution failure)"라면서도 "트럼프가 바이든 문제를 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가 바이든의 사면을 무효화할 권한은 없다"며 "해당 사안은 오직 미국 대법원에서 다룰 수 있으며, 대법원이 이를 다룰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자신도 같은 방식으로 사면을 행사하게 될 텐데 왜 이 문제를 들고나왔는지 모르겠다"며 "결국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트럼프 자신이 법적 검토 대상이 될 위험만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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