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7년 전 핵 시설의 폐기와 대북제재 해제 혹은 완화를 놓고 비핵화 협상을 진행했던 북한이 "협상을 통한 제재 해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대화 '손짓'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협상 결렬의 '쓴맛'을 봤던 1기 때의 방식으로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무성 대외정책실장은 24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낸 담화에서 "우리는 더 이상 덜어버릴 제재도, 더 받을 제재도 없다"라고 말했다. 외무성은 그러면서 "제재 해제 문제는 우리의 의정에 올라와 있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외무성은 "제재는 우리로 하여금 가장 가혹한 외부적 환경 속에서도 생존하고 자생하며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보다 완벽하게 터득하도록 해줬다"면서 이미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의 다양한 제재 속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았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대한 힘의 비축을 그 무엇보다 서두르게 한 결정적 요인으로 됐다"라면서 '제재로 인해 우린 더 강해졌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민수경제와 관련한 대북제재 결의안 5개의 해제를 조건으로 핵심 핵 시설인 영변을 사실상 폐기하겠다는 협상안에 공감대를 가진 채 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돌발적으로 영변 외 지역의 다른 핵 시설까지 추가 폐기할 것을 요구하며 협상이 결렬됐다.
당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회담 결렬 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민수경제 관련 제재 결의안 해제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만큼 북한 경제에 치명타를 안긴 제재를 푸는 것은 북한의 중요한 과업이었다.
그랬던 북한이 트럼프 2기에선 제재 해제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비핵화는 없다'라는 주장에 이어 나온 이같은 주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7년 전과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협상 방식'의 준비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기본적으로 '제재 무용론'을 기반으로 협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이 '대북 적대시' 기조를 버린다는 메시지 차원에서 각종 독자제재를 먼저 해제하는 것이 협상 개시의 조건이라는 논리를 전개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유엔 차원의 제재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이미 정상적 운용이 어렵기 때문에 미국의 독자제재를 푸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러시아는 지난해 15년간 관례적으로 매년 1년 단위 임기를 연장하던 대북제재 감시 주체인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의 임기 연장을 처음으로 반대하며 패널이 해체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이제 유엔 차원의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것의 실익이 작아졌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때문에 미국의 독자제재 해제를 통해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철회'의 효과를 낸 뒤, 트럼프 대통령의 핵 보유국 인정 등을 통해 입지를 강화한 뒤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카드로 한 '담판'을 벌이겠다는 계산으로도 분석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다극화·신냉전' 상황 속에서 유엔의 대북제재 메커니즘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됐을 것"이라면서 "더 이상 유엔의 제재 해제를 카드로 삼는 협상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의도가 내포돼 있는 주장"이라고 분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비핵화 협상을 지난번과는 확실히 다르게 하겠다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그간 꾸준히 주장해 온 '적대시 정책' 철회를 더 강하게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으로도 보인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러시아와의 밀착을 통한 경제적 반대급부가 예상보다 더 커 북한이 당장 경제적 이익을 위한 협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향후 1년가량은 러시아와 더 밀착할 시간이 있어 미국에 '구걸하는 식'의 제재 해제를 하지 않는 것으로 기조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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