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1) 김승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對)미 무역 흑자국에 4월 이후 국가별 맞춤형 '상호 관세' 부과 계획을 밝히면서 우리 정부의 대응도 분주해졌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대부분 관세가 철폐된 상태지만, 트럼프가 비관세 장벽까지 두루 검토한다고 밝혀 한국도 상호 관세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557억 달러(81조원)로 세계 9위에 해당한다.
미국의 이번 관세 규제는 상호 관세라는 이름만 붙었을 뿐, 내용을 보면 사실상 상대국이 취하는 모든 통상·무역 정책을 문제 삼아 얼마든지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하는 무적의 카드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트럼프발 상호 관세에 대해 사실상 기준이 없는 무차별 규제인 만큼, 규제 발효까지 한 달여 남은 시간 미국 정부와의 협의 과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비관세 장벽 개선은 제도 개선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아 현재의 여야 간 정쟁을 잠시 뒤로 하고, 기민하게 법 개정 등을 협의해 한국 경제를 선진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허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서강대 세계 무역연구소장)는 "(정부의 제도 검토, 여야정 협의체의 논의로) 제도 개선을 통해 대미 통상 문제에 대응하면서도 한국 경제를 선진화하는 계기로도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허윤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외교부, 기획재정부에 경제 안보, 공급망 관리를 조언하는 통상 전문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상호 무역 및 관세에 관한 각서'에 서명했다.
각서에 따르면 앞으로 미국은 △미국 제품에 부과되는 관세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미국 기업, 노동자,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불공평한 역외 세금 △비관세 장벽 또는 조치 △미국 기업에 대한 부당한 규제나 차별 △환율 등을 고려해 상대국과의 비호혜적 무역 관계를 검토한다.
상호관세는 두 국가가 서로의 관세 수준을 동일하게 맞추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FTA를 통해 사실상 관세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를 언급하며 비관세 장벽을 고려하겠다고 선언했다. 각국의 비관세 장벽을 평가해 국가별 관세 부과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비관세 장벽이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추가적인 관세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비관세 장벽은 수출하는 과정을 복잡하게 하거나, 검역·허가 제도, 쿼터제 등 관세를 제외한 무역 제한 조치다. 관세를 철폐한 국가 간에도 자국 산업 보호 등을 목적으로 비관세 장벽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각국의 국내적인 이유나 소비자 안전 확보를 목표로 도입한 제도가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비관세 장벽은 종류도 다양하고 국가별 도입 방식·강도도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비관세 장벽을 관세로 변환하는 '관세 환산치'의 명확한 기준이 없다.
따라서 비관세 장벽을 고려한 상호관세의 산업 영향은 향후 한-미 간 협의에 달린 것이다.
허윤 교수는 "미국에서 (상호관세 적용을) 4월로 시간 둔 것은 미국 입장에서 적자가 나는 부문에서 기업 우려 사항을 시정해달라고 시간을 주는 것일 수 있다"며 "미국과 FTA를 맺지 않는 나라보다 우리나라는 FTA로 비관세 장벽 논의가 반영된 상태라 상대적으로 수정할 게 적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대외 경제현안간담회'를 열어 대응 점검에 나섰다.
최 대행은 "미국이 관세뿐만 아니라 부가가치세, 디지털 서비스세 등 비관세장벽까지 포함해 평가할 것으로 예고한 점을 감안해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성이 있다"며 "미국 측의 핵심 관심 사항을 파악하고 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우리의 취약점과 비관세장벽 등을 면밀히 점검하고 미국에 설명할 자료를 준비하는 등 철저히 대비하라"고 강조했다.

비관세 장벽 개선은 제도 개선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농산물 검역 기준을 변경하는 것은 대통령령, 총리령, 시행령, 고시에 위임된 경우에는 대통령 권한 대행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제도 변경 절차가 간단한 편이다.
법 개정 수준으로 가면 국회의 협의가 필수다. 정치적 불확실성, 갈등이 고조된 현재 한국 상황에서 타협을 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미국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한 플랫폼 규제의 경우 법 개정이 수반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불확실성,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대미 협상 레버리지를 마련하는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허윤 교수는 "제도 개편의 경우 국내 경제, 산업,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에 미치는 면밀히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며 "(미국 요구에 대응하는 동시에) 정부가 국내 경제 체질이나 국제 환경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제도 개선 기회로 삼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정부와 국회가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고 대미 협상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며 "(제도 개편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국회와 정부가 바로 무슨 법을 바꾸는 게 아니라 우리의 방향을 제시하면 되니까 국내적 논의할 여건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정부와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국정협의체는 20일에 첫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seungjun24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