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유진 기자 = 대전에서 초등학생 김하늘 양(8)이 우울증을 앓던 40대 교사로부터 흉기에 찔려 숨졌다. 사건 발생 전에도 해당 교사가 동료 교사를 상대로 폭력 행동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교원의 정신건강 관리 체계와 법적 근거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11일 교육계에 따르면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교원을 임용 과정은 물론, 근무 중 위험 징후가 나타나도 현장에서 학생과 분리할 수 있는 강제성과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
해당 교사는 지난해 12월 우울증을 이유로 6개월 휴직했다가 돌연 병원 진단서를 제출하고 20여 일 만에 복직했다. 교원의 휴직·복직 관련 예규와 국가공무원 복무 규정상 질병 휴직 교원의 복직은 본인이 제출한 병원 진단서만 있으면 돼서 바로 복귀할 수 있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가해 교사의 폭력 행동에 학교 측은 이 사건을 교육지원청에 알렸고, 장학사는 학교를 찾아가 조사한 뒤 이 교사에 대한 '분리 조치' 의견을 제시했지만 분리 조치는 되지 않았다. 해당 교사의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대면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같은 날 참변이 일어났다.
각 시도교육청에 설치된 정신적·신체적 질환이 있는 교원의 직무수행 가능 여부를 심의하는 '질환교원심의위원회'가 있지만 유명무실할 뿐이었다.
대전시교육청 질환교원심의위 규정에 따르면 교육감은 질환교원에 대한 사안이 민원, 감사 및 기관장의 요청 등으로 접수됐거나 자체적으로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경우 즉시 해당부서로 하여금 사실을 조사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질환교원심의위의 경우 당사자의 반발이 심하고 자치법규의 적용을 받아 강제성과 구속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실상 처분까지 내려지는 경우가 없는 것은 물론 위원회 조차 열리기 쉽지 않다. 최근 2년 간 대전에선 심의 사례조차 한 건도 없었을 정도다.
대전뿐 아니라 서울시교육청에서도 2021년부터 현재까지 심의위는 한 건도 열리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제보나 감사를 통해 질환 교원의 장기적 직무 수행이 어렵다 판단되면 사안 조사를 통해 심의위를 연다"며 "본인에 대한 침입적 성격의 처분이 될 수 있어 (당사자의) 의견을 듣도록 돼 있다"고 했다.
심의위의 질환 교원에 대한 조치 수준도 각 시도교육청별로 다르다. 대전은 최대 직권 면직 처분까지 가능하다.
교원의 정신건강은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 실제 국회 교육위원회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우울증 진료를 받은 교사 등 초등학교 종사자는 9468명에 달했다. 초등학교 종사자 1000명당 우울증 진료 인원은 37.2명으로 2018년 16.4명에 비해 5년 새 2.3배로 증가했다.
이에 교원 정신건강 체계 전반에 대한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교원 임용 이전부터 체계적으로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임용 전 마약 검사와 건강검진 등은 이뤄지지만 정신질환 병력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처가 없는 상황이라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교사는 임용 이전 과정에서도 정신 질환자를 분류하지 못한다"며 "임용 전부터 정신건강에 대한 검사도 포함하고 교육 당국의 재정 지원과 향후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법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갈길은 멀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른바 '교사 정신 건강 증진 법안'은 지난달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수정·의결됐지만 여전히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절차를 통과해야 하는 상황이다.
법안은 △정신건강 상담·검사·진료비용 지원 △정신질환 예방·치료·재활 프로그램 운영 △정신건강 관련 상담과 심리치료 프로그램 운영 △정신건강증진사업 대상자의 권익보호 및 조직 내의 편견 해소 등을 담고 있다.
다만 교육감이 교원의 정신건강 실태에 관한 조사를 2년마다 실시하고 이를 정신건강증진사업 추진에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은 빠졌다.
영국과 일본은 매년 교육당국이 '교사 정신 건강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교사의 근무환경과 정신건강 수준을 지역별, 나이대별로 분석해 교육정책 권고사항을 발표하거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실태 조사를 통해 정신 질환 교원을 관리할 경우 다양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와 정신 질환과 범죄를 단정 지어 연관 지어 자칫 '낙인 효과'가 생길 수 있단 목소리도 나온다.
전교조 관계자는 "전체 교원에 대한 강제적인 실태 조사에 대해선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정신 질환이 있는 교원을 마치 '잠재적 가해자'로 만들어 오히려 (그들을) 숨게 만들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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