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규빈 구교운 강승지 기자 =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인용하면서 윤 대통령이 4일부로 직위를 상실했다. 이에 따라 의대 정원 확대와 필수의료 지원 강화 등 윤석열 정부가 역점을 둔 의료개혁 드라이브도 중대 국면을 맞았다. 의료계에서는 탄핵 인용을 환영하며, 잘못된 의료정책을 바로잡을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의료계는 탄핵 인용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정책 전반도 재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윤 대통령의 파면으로 당장 한덕수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게 됐지만, 향후 대선 및 총선을 앞둔 정치 일정 속에 의대 정원 문제는 원점에서 재검토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의사 단체들은 우선 헌재의 결정에 대해 '환영'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윤 정부의 의대증원, 필수의료패키지 등 의료개혁을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탄핵 인용을 계기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등에서 추진되던 잘못된 의료정책들을 중단하고,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정책패키지 등을 합리적으로 재논의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며 "현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의료농단 사태를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전국의대 교수협의회는 선고 직후 성명서를 통해 "헌법적 가치를 무시한 윤석열표 의대 증원과 의료정책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도 "이번 파면 결정은 의료계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무책임한 공직자들에게 내려진 준엄한 경고"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의사회도 "탄핵 인용과 함께 윤석열 정부가 선포한 의료계엄을 즉각 해제해야 한다"며 "의료개혁을 명분으로 의료현장을 짓밟고 전공의 탄압을 자행한 윤석열 정부의 책임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공의 수련 환경, 의료사고안전망 구축, 수가 조정 등을 재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를 계기로 전공의와 의대생의 복귀를 유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료포럼은 입장문을 통해 "의료계도 윤석열 대통령 파면에만 방점을 찍고 방관자처럼 지켜보기만 하면 안 된다"며 "의료계가 목표로 하는 의료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일관되고 강한 추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이번 탄핵 인용 결정에 대해 "의료계 현장에 오히려 희망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며 "의료정책을 논의할 때 (현재 같은) '의정협의체'가 아니라 '여야의정협의체' 처럼 정권이 바뀌어도 논의가 지속될 수 있는 탄탄한 조직을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 정부가 출범하고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와 협상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되면 하반기에는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가 가능할 수도 있으며, 의대생들도 이르면 5~6월부터 본격적인 학업 복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중요한 것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향후 필수 의료 분야에서 전문의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는 "국민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는 의료 위기를 정쟁과 무리한 정책으로 악화시킨 지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의료공백을 주장하면서 정작 보건소에 민간 의사 채용 노력은 하지 않은 채, 값싼 공중보건의사에게만 의존하는 지자체의 태도는 지역의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명백한 도덕적 해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협회 자체적인 전국 보건지소 실태조사와 모범사례 개발을 통해 공중보건의사 배치의 적절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정부와 의료진과의 신뢰회복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부는 보다 유연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의료계와의 신뢰 회복에 힘써야 한다"며 "사태 해결을 위한 건설적인 대화의 장이 열리길 바란다"고 적었다.
빅5 병원 사직 전공의 A 씨도 "이번 의료사태를 일으킨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박민수 차관 등 고위관계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 전에는 정부와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기 어렵다"며 "모두가 수련을 중단하고 병원을 떠났을 때 돌아온 것은 탄압과 계엄이었고, 휴학하지 않고 학교에 남아 의사 국가고시를 치른 학생들에게 되돌아온 것은 '검찰 송치'였다"고 했다.
의료공백 사태, 의료민영화 등 의료현안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약사 등이 모인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보건 의료인들은 윤 정부가 추진하던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고 공공의료를 바로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정부와 각 정당은 의·정 갈등을 풀고 의료공백 사태를 정상화해 환자가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드는 일에 최우선을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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