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는 양의와 한의라는 '보건의료 이원화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양의에게만 비급여를 보장합니다. 마치 휴대폰을 살 때 한쪽에만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서울=뉴스1) 조유리 구교운 기자 = 지난해 4월 제45대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 회장으로 취임한 윤성찬 회장은 8일 뉴스1과 만나 '양방독점적 의료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을 명료하게 집어냈다.
윤성찬 회장은 지난해 의료계 파업이 일어나자, 의료진이 부족해져 응급실 뺑뺑이 등 차질이 빚어진 것도 이런 문제점의 연장선상이라고 본다.
윤 회장은 "한의사는 아픈 이들을 치료할 준비가 돼 있지만 기울어진 보건의료 이원화 제도 아래에 받은 차별의 피해가 환자에게까지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특히 2009년 2세대 실손보험을 만들 당시 표준약관을 개정하며 한의 비급여 치료를 실손보험 대상에서 제외한 조치가 큰 파문을 불러왔다는 평가다.
그는 "어떤 병원을 가서 치료받을 것인지는 환자의 선택인데 비용 보전의 여부에 따라 환자의 의료 선택권이 교묘하게 제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2014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치료 목적이 명확한 한의 비급여를 실손보험 보장 대상에 포함하라고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에 권고했지만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유의미한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윤 회장의 가장 큰 걱정은 편중된 보건의료 이원화 제도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한의학 종주국'으로서의 위상 격하다. 예컨대 우리나라처럼 보건의료 이원화 제도를 택하고 있는 중국, 인도, 대만 등의 나라는 정부 차원에서 중의학의 발전에 앞장서 투자를 한 덕에 광폭 행보를 보인다. 특히 최근 들어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상승하는 추세다.
세계 전통의약 시장과 세계보건기구(WHO) 내 전통의학과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에서도 차이가 난다. 한의협에 따르면 세계 전통의약 시장은 2027년 7682억 달러, 한화로 약 1123조 원 규모에 달한다.
중국과 인도 등 주요 국가들은 이런 글로벌 전통의약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중국은 자국 헌법에 '중의약 육성발전'을 명시해 국가적 차원에서 발전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윤 회장은 "10년 전 지금 전통의학 산업 규모가 30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며 "현재 시장에서는 중의학이 70%를 인도와 대만이 각각 10%를 차지하며 우리나라는 1% 규모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WHO 등 국제기구의 전통의학과에서도 북한보다 입지가 낮다는 설명이다.
한의협은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9월엔 제주에서 침술을 사용하는 전세계 의사들의 국제학술대회인 ICMART(이크마트)를 동아시아 최초로 개최하고, 우즈베키스탄 전통의학과학임상센터와 업무 협약을 체결해 교류하는 등 한의약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이크마트에서 전통의학과 관련된 학회의 가입을 받아들인 것은 대한한의학회가 유일하다. 한국의 침술과 그 근본인 한의학이 그만큼 체계적으로 정리, 연구돼 세계 의사들에게 현대한의학으로써의 학술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정 갈등이 1년 2개월 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윤 회장은 '한의사를 활용한 공공의료'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지금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의사로서 활동할 수 있는 시점은 10년 뒤"라며 "의과대학과 75% 이상 동일한 교육과정을 거친 한의사들을 필수 의료 영역에 활용하는 방법이 현재 지역·필수의료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하며 올해 의사면허를 취득한 인원은 불과 269명에 불과하다. 지난해의 8% 수준이다. 의료인이 부족한 의료 취약지에서의 의료 공백은 훨씬 더 심각하다. 지난해 기준 전국 1223개 보건지소 중 공중보건의사가 근무하는 곳은 558개소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윤 회장은 한의사가 2년의 추가 교육을 받고 국가시험에 합격한 다음 필수의료 분야의 전문의 과정을 밟는 '3단계' 지역필수공공의사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지역 한정 의사 배출을 통해 의료 취약지의 의료 마비를 막고 국민 건강권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환자의 건강권과 의료 선택권을 위해 한의사의 엑스레이(X-ray) 사용을 허용하고 수가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엑스레이 활용은 시대적 요구라며 '오진이 늘어날 것'이라는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은 모순이라고 반박했다.
발목을 다친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 엑스레이를 사용하면 인대 손상인지 골절인지를 곧바로 알 수 있어 진료 효율성과 안전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한의원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하는 곳이 거의 없어 정확한 진단을 위해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촬영하고 다시 치료받으러 한의원에 돌아오는 불편이 있다.
빨라진 대선 상황에서도 한의협의 방향성은 기존과 변함없다. 윤 회장은 차기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의료 공공성 강화'라는 기본 방향은 같다고 전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윤 회장은 이를 진정한 '한의 독립의 해'로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대한제국 시절 의사규칙 선포와 함께 ‘의사’로서 환자를 위해 모든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던 지금의 ‘한의사’는 1910년 경술국치와 함께 시작된 일제강점기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의생’으로 격하됐으며 1944년에는 더 강화된 민족문화말살정책에 따라 ‘의생’의 지위조차 사라졌다. 그리고 광복 후 1951년이 돼서야 ‘한의사’로 부활했다. 이 7년여간 일제강점기의 의료제도를 답습한 의료법이 모든 의료의 기준이 돼 한의학의 입지는 대한제국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좁아졌다는 설명이다.
윤 회장은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 한의학이 양방 독점적인 보건의료 이원화 체제에서 진정한 광복을 맞이하고 한의사가 의료현장에서 환자 치료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프로필
△1967년생 △원광대 한의학 학사·석사·박사 △수원시 한의사회장 겸 중앙회 무임소이사 △제28대 경기도 한의사회 수석부회장 △제29~31대 경기도 한의사회장 △경기도 한의사회 코로나대응특별위원장 △원광대학교 외래교수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 △제45대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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