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배구 여제' 김연경은 떠나는 순간까지도 '여제'다웠다. 은퇴를 앞둔 시점에도 받을 수 있는 개인상을 모두 휩쓸며 한국 배구 최고의 선수임을 보여줬고, 감정이 북받치는 상황에서도 특유의 입담으로 주변을 웃게 만들며 슈퍼스타다운 면모도 놓치지 않았다.
김연경은 14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그랜드호텔 4층 컨벤션홀에서 도드람 2024-25 V리그 시상식에서 정규리그 MVP, 베스트7, 20주년 베스트7을 싹쓸이했다.
선수 커리어 마지막 순간까지 김연경은 최고였다. 김연경은 이번 시즌 여전히 전성기의 기량으로 소속 팀 흥국생명에 통합 우승(정규리그 1위+챔프전 우승)을 안겼고, '마지막 시상식'에서 그에 걸맞은 수많은 트로피로 보상받았다.
몇 년은 거뜬할 기량을 증명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김연경의 은퇴 결심에 더욱 확신을 주는 계기가 됐다.
김연경은 은퇴를 예고했을 때부터 "최고의 순간일 때 마무리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여전히 기량이 좋을 때 그만두면, 더 미련이 많이 남을 것 같은데 김연경은 달랐다. 항상 마지막 모습을 가장 높은 곳에 섰을 때로 기억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연경을 지도하는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은 "월드클래스 레벨의 선수는, 자신의 실력이 최고에서 조금만 내려와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로, 김연경의 은퇴 선언을 애써 이해해 보려 했다.
실제로 김연경은 시상식 후 선수로서의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친 뒤에도 "원했던 모습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그 결과 김연경에게는 '여제다운 은퇴'라는 찬사와, V리그에 다시 나오지 않을 선수를 보내는 아쉬움이 더 짙게 뒤따랐다. 모두가 손뼉을 치며 찬사를 보냈고, 이별을 아쉬워했다. 김연경은 이를 자신의 배구 선수 '마지막 씬'으로 기억하게 됐다.
언제나 슈퍼스타로 활약했던 그가 가장 높은 곳에서 은퇴를 맞이하고 싶다고 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그 순간마저도 자신이 원하는 계획대로 해냈다.

김연경다운 모습은 또 있었다.
그동안 선수 김연경은 재치 있는 입담과 팬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언행으로 늘 주목받았다.
올스타전에서는 아본단자 감독의 '민머리(?)'를 어루만지는 익살스러운 댄스로 다소 지루했던 분위기를 뜨겁게 끌어올렸다.
리그 경기 중에는 일부러 팬 앞에서 크게 포효하고, 필요에 따라선 큰 몸짓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등 V리그 흥행을 위해선 자신이 망가지는 일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면서도 진중했다. 한마디로 모두의 마음을 응집시켜 결과를 바꾼 적도 있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해 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라는 진심이 담긴 외침으로 국민들에게 울림을 줬다. 이는 여자배구대표팀의 4강 신화로 이어졌다.

스타 기질이 다분한 김연경의 모습과 울림을 주는 입담은 마지막 순간에도 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를 진행한 아나운서가 "많은 분이 김연경을 보낼 수 없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마지막 한 마디를 부탁한다"고 하자, 김연경은 자신도 '특별 헌정 영상'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음에도 금세 장난기를 발동했다.
그는 "여기 울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루하니까 몇 분이 하품을 하신다. 배고프다고 빨리 내려가라는 사람도 있다"면서 좌중을 웃겼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제 선수는 아니지만, 앞으로도 배구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로 선수로서의 마지막 인사를 했다.
천하의 김연경이라 해도, 분명 슬플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여러 감정이 요동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연경은 여유 있는 농담과 유쾌한 입담으로, 마지막까지 팬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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