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초반 주춤하던 '디펜딩 챔피언' KIA 타이거즈가 반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서히 투타 밸런스가 맞아가며 승리하는 경기가 많아지는 양상이다.
지난주 KIA 타선에서 눈에 띄는 이름은 박찬호(30)였다. 우승했던 작년에 이어 올해도 리드오프와 유격수를 맡으며 공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그다.
그는 지난주 6경기에서 타율 0.375(24타수 9안타)를 기록했다. 첫 2경기였던 15~16일 KT 위즈전에서 무안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나머지 4경기에서 무려 5할(18타수 9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다.
지난 20일 두산 베어스전에선 5타수 4안타 2득점 1타점의 '원맨쇼'를 펼쳤다. 9회초엔 안타로 출루한 뒤 상대 실책을 유발하는 주루플레이로 상대의 혼을 빼놓기도 했다. 박찬호다운 모습이었다.

◇출발부터 불안했던 박찬호…슬럼프에 부상까지 '이중고'
박찬호는 사실 시즌 초반 마음고생이 많았다. 좀처럼 타격감이 올라오지 않으면서 부진에 시달렸다.
게다 3월25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선 도루를 시도하다 부상을 당하면서 잠시 전력에서 이탈하기도 했다.
부상에서 돌아온 뒤에도 좀처럼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최근 4경기의 반등 이전까지 타율이 0.158로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통상 타격은 사이클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잘 치는 타자라도 계속 잘 칠 수 없고, 반대로 계속 못 치더라도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긴 시즌을 치르다 보면 결국 선수의 본래 기량에 맞춰 평균에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렇게 보면 박찬호의 부진을 크게 생각할 것은 아니었으나, 문제는 팀 상황이었다. 김도영, 김선빈이 부상으로 빠져나간 데다 박찬호와 최원준 등 기존의 선수들마저 좀처럼 부진에서 헤어 나지 못하면서 KIA 타선은 말 그대로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무기력했다.
팀의 부진과 맞물려 슬럼프를 맞이한 박찬호는 이래저래 마음고생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본인의 부진보다 팀 상황이 안 좋은 것이 더 마음에 쓰인다는 그였다.

◇그래도 믿은 사령탑, '리드오프 박찬호'를 고집했다
그런데 이범호 KIA 감독은 박찬호의 부진에도 좀처럼 타순 조정을 하지 않았다. 시즌 전 구상한 대로 리드오프, 1번 타순으로 줄곧 박찬호를 내보냈다.
최근 야구에선 1번 타순이 매우 중요한 자리다. 예전엔 발 빠르고 콘택트 능력이 좋은 타자들이 배치돼 '밥상'을 차려주는 테이블 세터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가장 많은 타석을 소화하는 타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선두 타자'라는 건 1회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경기를 9회까지 치르다 보면 결국 가장 잘 치는 타자가 가장 많은 타석을 소화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이론이 나온다. 메이저리그의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가 그렇고, 멀리 갈 필요 없이 지난해와 올해의 멜 로하스 주니어(KT 위즈), 야시엘 푸이그(키움 히어로즈)가 그런 사례다.
하지만 이범호 감독은 '전통적 의미'의 1번 역할을 더 중요시하는 감독이고, 박찬호의 1번 타순을 고집했다. 김도영과 김선빈이 없고 최원준이 부진한 상황에서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일부 팬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팀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부진한 선수에 대한 믿음이 지나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래도 이범호 감독은 자신의 생각을 좀처럼 거두지 않았고, 박찬호는 '비교적' 빠른 시일에 반등을 시작해 감독의 신뢰에 보답하기 시작했다.

◇야구에 정답은 없지만, '숫자'가 전부는 아니다
물론 박찬호의 반등 역시 일시적일 수 있다. 다시 슬럼프에 빠지고, 팬들의 여론이 들끓고, 결국 타순이 조정될 수도 있다. 정해진 정답은 없고, '결과론'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게 스포츠다.
하지만 이범호 감독의 '신뢰'는 단순한 고집만은 아니었다. 야구만큼 숫자와 친숙한 스포츠가 없다지만, 결국 이 역시 기계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팀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선수의 심리와 기분, 팀 전체적인 분위기 등 멀리 내다보고 전체를 아울러야 하는 것이 사령탑의 역할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결국 긴 시즌을 치르다보면 선수의 기량이 평균치로 회귀한다고 가정했을 때, 기회를 부여하고 믿음을 주면서 반등을 기대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박찬호의 1번 타순을 고집한 것 또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난해 3할 타율의 호성적을 냈던 이력, 선수 본인의 선호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실상 감독의 '고집'이라고 꼬집기에도 애매한 것이, 시즌을 시작한 지 한 달에 불과한데다, 박찬호는 부상 등으로 15경기만 뛰었다.
데이터나 최근의 흐름 등을 고려하면, 박찬호의 타순을 조정해야 한다는 일부 팬들의 주장은 분명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령탑의 판단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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