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홍유진 기자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문을 두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쉽고 간결한 언어로 작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인 만큼 복잡한 법률 용어 대신 쉬운 언어로 소통하면서도, 12·3 비상계엄의 위헌 요소를 알기 쉽게 조목조목 지적했다는 분석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가 작성한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문은 총 106쪽(별지 제외·포함시 114쪽)으로 역대 대통령 탄핵 사건 결정문 중 가장 긴 분량이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을 접수한 이후 111일 만에 이 결정문을 내놨다.
결정문은 서두에서 탄핵심판의 적법성에 대해 먼저 살펴본 뒤, 탄핵소추 사유 5가지를 쟁점별로 다뤘다. 결정문의 핵심을 요약한 선고 요지는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22분간 낭독했다.
특히 이번 결정문은 비상계엄의 배경부터 전개, 탄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 '명문'이라는 찬사도 나온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으로 제시한 국무위원 줄탄핵이나 입법·예산 독주 등 거대 야당의 정치행태를 180자, 두 문장으로 요약해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 전 대통령 측이 주장한 '경고성 계엄' 또는 '대국민 호소형 계엄'에 대해서는 "계엄법이 정한 계엄 선포 목적이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일축했다.
이어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단순히 '어떤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 중대한 위기 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대해서도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에 해당한다"고 간명하게 꼬집었다.
그러면서 헌재는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라고 강조했다.
헌재는 또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고 평가해, 시민들에게 울림을 선사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결정문 말미에 등장한 '대한국민'도 헌재가 고심한 흔적이 묻어나는 분석이다. 언뜻 생소하게 들리는 '대한국민'은 우리 헌법상 주어를 의미한다.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헌법을 개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 결정문을 통해 '대한국민'이 민주공화국의 법적 체계를 마련한 헌정사의 주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헌재는 탄핵 선고가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인 데다, 생중계가 될 점을 고려해 알아듣기 쉽게 결정문을 작성하려 노력한 것으로 짐작된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에도 결정문이 비교적 쉽게 작성됐다는 평가가 나왔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인 만큼 어려운 법률 용어보다는 직관적인 서술로 국민들을 납득시키려는 차원에서다. 특히 선고 당일 전국 곳곳의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탄핵 선고 방송을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최보기 북 칼럼니스트는 "중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수준의 문장과 단어로만 구성됐다"라며 "현란한 수사 위주였던 법적 문서들과 달리 간결한 글로 소통하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대한법학교수회도 전날 성명에서 "장기간의 평의와 숙고를 통해 그 결정문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고 유연한 논리로 작성해 국민을 존중했다"고 밝혔다.
이번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문은 주심을 맡은 정형식 재판관이 주도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심리에 참여한 8명 재판관 전원이 결정문에 서명하는 것으로 최종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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