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주평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고율의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를 부과하면서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증권가에서는 미국 수출량이 많은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이 5조 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는 등 기업들의 실적 하락을 우려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2일(현지시간) 상호 관세 발표 이후 증권가에선 기업들의 투자 의견을 조정하는 리포트들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전날(3일) 발간한 리포트에서 현대차(005380)에 대한 투자 의견을 기존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했다.
이번 상호관세에서 자동차는 제외됐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예고한 대로 수입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가 3일부터 발효됐다. 이중과세는 면했지만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특성상 가격 경쟁력 하락에 따른 판매 부진과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한 완성차 중 미국으로 수출한 물량은 143만 대(현대차·기아 101만 대, 한국GM 41만 대)에 달한다. 전체 생산량의 35%, 전체 수출의 51%를 차지한다.
한국투자증권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25% 관세가 적용될 경우 관세 부과액이 총 5조145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차의 2024년 미국향 수출량인 63만 8000대에서 전기차 6만 7000대를 제외한 47만대와 평균판매단가(ASP)인 3610만 원을 가정한 수치다. 전기차는 장기적으로 현대차의 미국 현지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생산 물량이 수출 물량을 대체한다고 가정했다.
김창호 연구원은 기아(000270)에 대한 투자의견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했다. 그는 한국산 25%, 멕시코산 25% 관세가 부과될 경우 기아의 관세 부과금액이 3조 9996억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아의 지난해 한국산 수출량인 37만 7000대에서 전기차 5만 6000대를 제외한 32만대와 ASP 3657만 원을 가정했다. 멕시코산 수출 물량은 지난해 수치인 14만대와 ASP 2500만 원을 가정했다. 현대차와 기아를 합쳐 관세로 인한 비용 부담만 9조 원 수준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서울모빌리티쇼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에서 가격 인상 계획이 없고 품질과 서비스 등 본연의 경쟁력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005930)는 최대 스마트폰 생산기지인 베트남에 상호관세 46%가 부과된 점이 뼈아프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박닌성과 하이응우옌 공장에서 전 세계에 판매되는 스마트폰 물량의 50% 이상을 만든다. 미국향 스마트폰 물량 역시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되는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전체 실적은 당초 전망치보다 상향되고 있지만, 디바이스경험(DX) 내 영업이익 비중이 높은 모바일경험(MX) 부문의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올해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기존 34조 5000억 원에서 36조 5000억 원으로 상향하면서도 "관세 부과로 인해 MX 부문의 2025년 2분기 이후 수익성을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카메라 모듈 등을 공급하는 삼성전기(009150)도 스마트폰 판매가 축소될 경우 간접적으로 실적 악화가 예상된다. 다만 김소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기의 대미 수출 비중은 제한적"이라며 "현재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는 한국, 중국, 필리핀에 공장이 있고 일부 MLCC를 중국에서 생산 중이나 이 또한 상대적으로 상호 관세율이 낮은 필리핀 공장을 중심으로 생산량 확대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배터리 업계도 상호 관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현대차증권은 국내 1위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373220)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3115억 원에서 2904억 원으로 하향했다.
강동진 연구원은 "미국 상호 관세로 OEM과 원가 부담을 공유하는 점을 반영했다"면서도 "미국의 중국 34% 상호 관세 부과로 미국 내 에너지저장장치(ESS) 공장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 홀랜드 공장,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을 활용해 ESS 제품을 생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DB증권은 포스코퓨처엠(003670)에 대해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17만 원을 유지했다. 안회수 연구원은 "양극재는 고객사들의 미국 물량 증가가 스케줄대로 이뤄진다면 과거 최대 출하량 수준(1만7000톤)을 회복할 수 있으나 미국 관세 시작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반기 눈높이 조절은 필요하나, 수주 기반 외형 성장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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