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동현 금준혁 기자
"이제 협상의 시간이다."
국제통상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에 대해 "트럼프식(式) 협상이 시작됐다"고 입을 모았다. 일단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국가별·업종별 협상 결과에 따라 관세나 인센티브를 새롭게 조정하겠다는 숨은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한일 협력 또는 한중일 3국 공조로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 시각) 한국에 25%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품목 관세가 이미 부과된 자동차·철강을 비롯해 반도체·의약품·구리 등은 한숨 돌렸지만,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는 불확실성은 남았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국내 기업의 수출기지 역할을 하는 아시아 국가들에는 50%에 육박하는 관세가 매겨진 점도 곤혹스러운 지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피터슨국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위원은 3일 한국경제인협회가 주최한 긴급 세미나에서 "(상호관세율) 25%는 다소 높게 책정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는 협상의 시작점일 뿐 종착점은 아니기에 감정적으로 성급하게 대응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에 따르면 국가별 상호관세율은 한국 25%를 비롯해 △중국 34% △유럽연합(EU) 20% △일본 24% △대만 32% △인도 26% △태국 36% △스위스 31% 등으로 결정됐다. 특히 베트남(46%), 캄보디아(49%) 등 한국 기업들이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가혹할 수준의 고율 관세가 매겨졌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도 "상호관세 발표는 시작에 불과하다. 국제통상 질서가 새롭게 변하는 대전환의 서막"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역시 "상호관세율 25%는 중국(34%), 일본(24%), EU(20%)와 비교하면 비슷한 레인지다. 최악은 피한 것"이라면서 "이제부터 (미국과의 협상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실제 트럼프 1기였던 2018년에도 당시 백악관은 철강에 25%, 알루미늄이 10%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당시에도 철강업계는 큰 혼란에 빠졌지만, 한국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연간 263만 톤까지 무관세 혜택을 받는 '철강 쿼터제'를 끌어냈다.

문제는 트럼프 2기가 발표한 상호관세는 1기 때보다 적용 범위가 포괄적이고, 근거도 '깜깜이'라는 점이다. 백악관은 비관세 장벽을 고려해 상호관세율을 산출했다고 주장하지만, 객관적 데이터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김종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무역통상실장은 "미국이 상호관세율을 책정한 근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라며 "25%(상호관세)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 파악해야 정부나 민간에서도 협상 카드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동향을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 관세'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여한구 위원은 "업종별 관세율에 상호관세를 플러스(+)해서 반도체, 자동차, 철강, 바이오, 알루미늄 등이 더 추가될 수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기보다 일본·중국 등 처지가 비슷한 국가들과 연합 전선을 구축해 대응하는 것이 '히든카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초강대국인 미국과 협상에서 열위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면, 국가 연대를 통해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여한구 위원은 "협상 패키지를 입장이 비슷한 나라와 조인트(공조) 하면 협상력이 배가된다. 한일 협력이 전략적으로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상호관세가 부과된 아세안 국가들이 연대하거나,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를 재개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며 "미국에 그런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이 촉발한 이후 재계를 중심으로 일본과의 연합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일본과 교류하면 서로 비용을 절감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달 중국에 이어 일본 출장길에 오른 상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발표로 '자유무역체제의 종식'을 선언했지만, 중장기적으론 극심한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을 유발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공감했다. 다만 단기적으로 글로벌 공급망 혼란을 유발할 수 있어 민관이 서둘러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통상학회장인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학자로서 트럼프 정책을 보면 기본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관세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기 때문에 증세(inflation tax) 효과만 유발될 것"이라며 "트럼프 2.0 통상정책이 실질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김태황 명지대 교수는 베트남에 46%의 상호관세가 부과된 점을 예로 들며 "베트남 공장에서 한국산 중간재로 생산한 휴대전화를 미국에 수출한다면 관세를 어떻게 책정할 것인지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또 중국이 (상호관세 34%를 피해서) 다른 국가로 우회 수출, 우회 덤핑한다면 어떻게 막을지도 복잡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민관 합동 대책 회의'에서 "정부는 통상교섭본부장의 방미(方美)를 포함해 각급에서 긴밀한 대미 협의를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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